최근에 친구가 책 한 권을 추천했습니다.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틱낫한 스님 지음)입니다. 반야심경을 쉬운 말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스님께서는 한 가지 진리를 여러 가지 방편으로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상호연결성’입니다. 이는 ‘분리된 존재는 없다’와도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틱낫한 스님이 우리를 위해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 실은 이 진리는 부처님 이전에 그리고 세상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만의 독특한 깨달음이 아닌 온 우주의 탄생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저의 소견일 뿐입니다.
어제 서울 둘레길 중 대모산 길을 걸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혹시나 길이 미끄럽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이젠을 준비하라고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틀 전부터 날씨가 푸근해지더니 어제는 영상의 기온이었습니다. 이틀간 푸근한 날씨 덕에 눈은 거의 다 녹아있었고, 얼어붙은 땅도 녹아 등산화에 잔뜩 진흙을 묻히며 걸었습니다. 녹은 눈과 땅을 보며 갑자기 상호연결성, 상호존재, 분리된 존재는 없다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눈이 내리고 한파로 인해 땅은 얼어있었습니다. 날씨가 푸근해지며 눈도 녹고 땅도 녹았습니다. 눈을 보고 눈세상이라고 하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눈을 보고 비세상이라고 하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또한 계절이 바뀌며 눈은 비로 변하고, 추위는 더위로 변합니다. 눈과 비는 하나이고, 추위와 더위 역시 하나입니다. 눈 아래 생명을 꿈틀거리는 뭇 생명체들도 눈과 하나입니다. 눈을 보고 더위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더위를 보고 추위를 느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한 몸입니다. 다만 우리 눈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눈, 비, 진눈깨비라고 부를 뿐입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보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한 순간에 드러난 자연의 모습 일부분에 불과할 뿐입니다.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야겠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형상에 속기 때문입니다. 속는 이유는 욕심과 편견 때문입니다. 욕심과 편견은 ‘나’라는 상(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나’의 존재는 ‘너’의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상호존재가 아닌 분리된 존재가 됩니다. 화합이 아닌 투쟁이 시작됩니다. 이 나뭇잎이나 저 나뭇잎이나 한 몸의 일부인데, 이 나뭇잎이 저 나뭇잎과 비교하고 싸웁니다. 나무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그냥 내버려 둡니다. 언젠가 이들이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며 하나가 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거름이 된 상태에서 ‘너는 저기 두 번째 나뭇잎이었고, 나는 저기 세 번째 나뭇잎이었다’라고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요.
2013년 틱낫한 스님께서 잠심 실내 체육관에서 법문을 하셔서 참석했습니다. 법문 내용 중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망치질을 하다가 실수로 왼손에 든 망치가 오른손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왼손은 오른손을 감싸 안습니다. 왼손에 든 망치가 오른손을 쳤다고 해서 오른손으로 망치를 쥐어 잡고 왼손을 치지는 않습니다. 결과는 뻔하기 때문입니다. 양손 모두 만신창이가 될 테니까요." 이 말씀이 바로 상호연결성, 상호존재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아끼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밝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상호연결성을 느끼고 경험하고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우리는 걷습니다. 우리가 어제 걸은 길은 우리가 분리된 존재가 아닌 상호연결된 존재라는 귀한 자연의 법칙을 가르쳐 주는 스승입니다. 함께 걸었던 길동무를 통해 '그들'과 ‘나’가 '하나'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입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