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모름

by 걷고

지인 한 명이 내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너한테 물으면 늘 ‘잘 모르겠다,’라고만 해. 근데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아. 그런데도 자꾸 물어보고, 같은 대답을 들으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곤 해.” 돌이켜 보니 그 친구가 질문을 내게 많이 한 것 같지도 않고, 나 역시 뭔가 아는 체를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그 친구는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근데 이 말이 가끔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한 구석에 머물고 있다. 오늘 아침에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이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편견이나 주관에 불과할까? 과연 나는 알고 있다는 분야에 대해 어떤 사람 앞에서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을까? 스스로 그 분야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런 분야가 있다면 어떤 분야일까? 점점 아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오히려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이 솔직하고 편하다. 왜냐하면 단 한 분야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지식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남이 얘기한 것 또는 책에서 읽은 것을 열거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내용을 갖고 과연 내가 알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앵무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몇 가지가 있다. 걷기, 명상, 상담, 글쓰기. 누군가 내게 길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무엇을 얘기해 줄 수 있을까? 만약 서울 둘레길에 대해 묻는다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길에 대한 설명을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경험에 따른 설명이므로 객관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몸으로 직접 걸었기에 피상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경험의 전달이라는 면에서 나름 신뢰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설명에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개인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걷기에 관해서는 직접 경험했기에 솔직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그것도 내가 걸었던 길에 한해서 말이다. 거기까지다.


명상은 오랜 기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수행해 왔지만, 아직도 문 밖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직 입문조차 하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명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을까? 책에서 읽었던 얘기, 스님들의 법문을 전달하는 것은 앵무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랜 기간 수행해 왔다면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 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의 패턴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명상에 대해 또는 불교에 대해 말 한마디도 해서는 안된다. 잘 모르는 말, 직접 경험하지 않은 말은 거짓이고 사기다. 입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상담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상담도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다. 어떤 사람은 몇 가지 이론에 정통했고, 그 이론을 모두 통합하여 상담을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담자를 많이 만난 경험을 통해 내담자의 상황 파악과 어떻게 상담을 진행할지에 대한 방법이 그려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내담자를 만나도 아직까지 어떻게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답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유료 상담센터에 근무하는 것은 사기가 된다. 상담 봉사를 하며 내담자를 도우며 함께 성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길에서 만나 함께 걷는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 괜한 조언이나 상담 비슷한 언행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니 상담에 대해서도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상담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상담사가 아니다. 대신 경청을 할 수 있는 귀와 마음을 가진 상담사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취미다. 그래서 그냥 꾸준히 글을 쓴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 정리된 생각을 글을 읽은 사람들과 소통한다. 7년 이상 매주 두 세편의 글을 써왔으니 꾸준히 글을 쓴 편이다. 이제는 어떤 글감이든 떠오르면 두세 쪽 정도의 글은 편안하게 쓸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물론 누군가가 내게 글쓰기에 대해 묻는다면 한 가지는 얘기해 줄 수 있다. “몇 년간 꾸준히 써왔어요. 그것이 제가 글 쓰는 방법입니다. 그 외에는 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의 경험에 바탕한 얘기기에 적어도 거짓이나 사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거나, 이렇게 쓰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니 그냥 왜 글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조용히 듣는 것이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관심을 갖고 꾸준히 해 온 네 가지 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오직 모름’이다. 이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더 중요한 것은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거짓말을 한다면 이는 누군가에게 큰 죄업을 짓는 행위가 된다. 혼자 구덩이에 빠진 것은 자신의 업이고 자신이 만든 결과이니 상관없겠지만, 남까지 그 구덩이에 끌고 들어간다면 이는 지옥고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겠습니다.’라고 일관되게 자신의 ‘오직 모름’을 인정하고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 입은 닫고 귀와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 것이 ‘오직 모름’을 인정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키려 노력을 해야만 한다. 나와 주변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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