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벽안에게

by 걷고

한 친구가 있다. 벽안이다. 평생 일만 열심히 한 친구다. 나이 들어 퇴직을 한 후에도 여전히 쉴 줄 모른다. 벽안이 늘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언제든 편하게 쉬고 싶을 때 쉬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자신만의 휴식 공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에 원주 부근에 작은 농막을 지었다. 지은 후 축하 기념 모임을 할 때 방문했었다. 그 농막을 함께 만들고 지금의 농막을 만드는 데 큰 힘을 쏟은 친구, 범일도 있다. 두 사람 덕분에 멋진 휴식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농막은 두 친구에게 또 우리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그 농막에 두 친구가 이름을 붙였다. 문향(聞香). 향기를 듣는 곳. 향기를 맡지 않고 듣는다니 뭔가 어색하다. 예전에 법정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다. 어느 아이가 “스님, 바람이 달아요.”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 아이의 표현에 감동했다고 하셨다. 바람을 달게 느낄 수 있는 아이는 이미 향기를 들을 수 있는 아이고, 소리를 맛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일상의 편견을 깬 표현은 괜한 장난짓이나 멋 부림이 아니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일상의 편견, 자신의 주관, 세상의 판단과 가치 기준을 벗어난 자유인이다. 그런 면에서 농막을 만든 두 친구는 이미 세상의 걸림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멋진 친구들이다. 자유인 두 명이 나의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암 수술을 한 후 씩씩하고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벽안이 어깨가 많이 아프다. 그는 수술 후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내는 것은 자신의 삶이고, 관리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다. 벽안은 매사 그렇게 살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친구다. 그리고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는 친구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는 친구다. 모든 일이든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징그러운 친구다. 그 징그러움이 가끔 싫다. 조금 느슨하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의 삶에 나의 판단이나 편견이 끼어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삶을 존중한다.

암 수술 후 치료하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또 어깨에 심한 통증이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공부, 합창단 활동, 사찰 봉사활동,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 및 지원 활동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가족 내 여러 대소사 챙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책임감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삶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스스로 늘 그렇게 살아왔기에 몸의 아우성을 무시하거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부디 벽안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아끼는 것이 자신을 아끼는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가끔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젊었을 때는 마음이 몸을 이끌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사람들에게는 몸이 마음을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늘 마음이 몸을 이끌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익숙하지 못해 뭔가 할 일이 없으면 무척 당황스러워한다.


벽안이 최근에 어깨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동국대학교 힐링 코러스 정기 연주회’에 합창 단원으로 참가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나 같으면 이미 포기하고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수술 준비를 할 것이다. 이 점이 벽안과 나의 차이점이다. 벽안은 약속과 책임을 중시하고, 나는 나 자신을 중시한다. 벽안이 어깨 수술 후 미얀마나 태국 등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몇 개월 간 수행을 하며 몸과 마음을 쉬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제 처음으로 들었다. 물리적 거리감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가 있다. 그 거리감은 주변의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또한 참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준다. 이제는 벽안이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벽안님, 그동안 살아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어깨 수술 후 모든 일상사의 번뇌와 고통,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참 자유인으로 지내며 그간 당신을 이끌고 묵묵히 견뎌온 당신의 몸과 마음에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주길 요청합니다. 모든 역할과 할 일 등도 실은 몸에 묻은 때나 먼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훌훌 털어내고 가볍게 참 자유인의 삶을 누리시며 매일 편안한 삶을 누리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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