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코러스 정기연주회

by 걷고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합창 연주회에 참석했다. 친구 벽안이 합창단원으로 공연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힐링 코러스 연주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받은 감동보다 이번 공연에서 받은 감동이 훨씬 크다. 그 이유를 딱히 찾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공연 도중 몸도 마음도 들썩거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감상할 줄 모르니 그냥 노래려니 하고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배려인지 흥을 돋우는 프로그램을 중간에 섞어 놓았다. 'Libertango(with 아코디언)' 공연과 '아리랑 (with 모듬북)' 공연이 그랬다.


Libertango의 의미를 찾아봤다. ‘Libertad(자유)’와 ‘Tango (탱고)’의 합성어로 기존 탱고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존 탱고가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기에 거기로부터의 해방이 어떤 것인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다만 내게는 이 음악을 들으며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코디언 연주자는 음악에 취해서 연주하고 있었고, 합창단원들은 지휘자의 몸동작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그 음악에 손과 어깨와 다리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탱고를 멋지게 출 수 있었다면 무대 위로 뛰어나가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음악은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일상적인 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음악의 힘이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반응할 수 있다. 이것은 희망이다.


'아리랑 (with 모듬북)' 공연 역시 감동이었다. '아리랑'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노래에 세 개의 작은 북이 울리며 공연장을 거룩한 소리로 가득 채웠다. '아리랑'은 한스럽고 가슴을 저미는 노래다. 이 노래가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고, 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다. 산티아고 어느 성당에서 와인에 취해 한국인을 대표해서(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 무대에 올라 등산 스틱을 위로 뻗어 흔들며 '아리랑'을 불렀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스럽지만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노래, '아리랑'. 그 노래에 세 개의 작은 북소리가 얹힌다. 그 북소리가 사찰에서 사용하는 사물 (四物) 중 법고와 목어의 소리처럼 들렸다. 법고의 웅장함과 목어의 마른 소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가며 슬픔과 한을 녹여내 연민으로 변화시킨다. 슬프지만 슬픔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아리랑'과, 그 설움과 한을 강렬하게 뿜어내는 모듬북 소리는 심장을 쾅쾅거리게 만들며 모두를 위한 기도 소리가 되었다. 울며 웃고, 슬프며 즐겁고, 한스러우며 행복한 우리네 삶을 위한 기도의 음악이었다.


벽안은 지금 몸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공연 준비를 하고 합창을 한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허긴 그의 삶이니 내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합창단원들 중에 유독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때로는 슬픈 듯, 때로는 힘이 없는 듯, 때로는 행복한 듯, 때로는 무심한 듯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노래를 들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되는데, 굳이 그렇게 씩씩한 척만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데. 공연도 끝났으니 이제 조금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공연 후 뒤풀이에서 축하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반가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불러본다. 강 선생님의 넉넉한 웃음과 허를 찌르는 유쾌함이 그립다. 강형진 단장의 다소 피곤하지만 의연한 모습이 그립다. 상일형의 순진함과 솔직함, 걸림 없는 언행이 그립다. 임 선생의 치아 치료가 원만하게 마무리되어 밝게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동안거 기간 중에도 참석해서 유쾌하게 자리를 이끌어 준 범일이 그립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매 순간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할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종림 씨가 그립다. 어제의 공연은 내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선물해 준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챙김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