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네 가지 분명한 앎

by 걷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은 날은 가까운 사람과 소통하며 좋은 기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들어서 겨우 하게 되었다. 반면 마음이 불편한 날에는 먼저 연락하는 것도 귀찮고 싫다. 그리고 누군가가 연락을 취해오면 괜히 그 자체가 부담되며 불편해진다. 답을 안 하기도 불편하고, 하기 싫은 답을 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나의 불편한 대응을 보며 상대방의 좋은 기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최근에야 겨우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 친구, 지인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위해 하는 언행이 때로는 기분 좋게 받아들여질 때도 있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이는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 자신이 편안하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반응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매일반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편안함 속에서도 불편함이 존재하고, 불편함 속에서도 편안함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즉 편안함과 불편함의 크기 차이에 따라 자신과 상대방의 관계가 이어질지 아니면 끝이 날지 결정된다. 편안함이 불편함보다 크다면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끝이 날 수 있다.


대인 관계에서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상대방을 위한 언행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 언행이 정말 순수하게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간섭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흔히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간섭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고, 부부나 가까운 관계에서도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사랑과 무관심, 배려와 생색의 균형점은 어디인가?

‘의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언행을 하기 이전에 먼저 그 의도를 살펴야 한다.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마음을 살펴봐야 한다. 통화의 상황으로 한정 지어 생각해 보자. 전화를 하기 전에 그 의도를 살펴야 한다. 왜 통화를 하고 싶을까? 심심해서, 할 말이 있어서, 업무 상황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서, 외로워서, 상대방과의 불편한 상황을 풀고 싶어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등등 통화에는 많은 의도가 있다. 통화하기 전에 자신의 의도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기와 시간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의도’를 점검하면 대부분 상대방보다는 자신을 위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그 통화의 시점이 반드시 지금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분명한 앎’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언행을 하는 것이 자신과 상대방에게 유익한가? 설사 유익한 언행이라도 장소와 시기 선택이 적절한가? 수행의 영역(사념처)에 있는 내용인가? 이런 언행을 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분명한 앎’을 대인관계에서 적용하면 자신과 상대방 모두 편안한 대인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겪은 경험이 많다. 또한 나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상대방보다는 자신 위주의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상대방을 위해 한 언행이 실은 자신을 위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또한 나의 언행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앞으로 언행 전 ‘의도’를 잘 살피고, 부처님의 ‘네 가지 분명한 앎’을 마음에 새기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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