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그냥 할 뿐
참 오랜 기간 잘 견뎌왔다.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면서 힘든 시간을 잘 견뎌왔다. 상담심리사 시험에 불합격되어 좌절했던 경험, 약 700곳 이상 상담사로 지원하면서 불과 두세 군데 외에는 면접조차 보지 못했던 기억,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막막함, 아내 보기가 너무 미안하고, 처가 식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던 기억, 그 와중에도 밖에서 사람들 만날 때에는 나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 등.
그런 과정을 지나오면서 많이 단단해졌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별거 없다. 단지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대로 안고 견디며 오늘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외에는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다. 세상은 단지 오늘,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히 길이 열린다. 그 길이 내가 갈 길이다. 그 길은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어진 길을 가면 고마움을 알게 되고 겸손을 알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간다는 얘기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어제 남북 하나재단 면접시험을 봤다. 면접시험을 위한 예상 질문을 만들고, 그에 맞는 답변을 준비하고, 글로 옮겨 쓰며, 늘 걸으며 또는 앉아서 그 답변을 되뇌이기도 했고, 걸으며 소리를 내어 답변을 말하기도 했다. 50 플러스 시민 기자단 1기 모집 공고에도 충실하게 준비했고,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것도 나름대로 글을 다듬고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제출했다. 어제 일단 서류 전형에서 통과가 되었고, 다음 주 화요일 면접을 보게 되어있다. 공교롭게도 그 두 곳의 최종 결과가 다음 주 수요일에 나온다.
아내는 내가 불합격되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힘들어할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일축한다.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합격 여부를 떠나서 나는 늘 오늘 내 할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치게 된다. 근데 나는 그렇지 않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고, 준비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가 나올 시기기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시절 인연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앞당기려 하니 심신이 피곤하고 지치게 된다. 그냥 오늘 할 일에 충실히 하면 저절로 길이 열린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삶 속에서 평온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일이고, 아니면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기에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된다. 결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과정을 사는 것이 삶이다. Doing Mode에서 Being Mode로 변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행복하다.
아내는 내가 매일 공용 사무실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오는 것이 안쓰럽다고 한다. 나는 할 일이 많고, 하루 종일 뭔가를 하는 것이 즐겁고, 집중이 잘 되어 너무나 좋다고 얘기하며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혼자 일해도 결코 외롭거나 심심하지도 않고, 사무실에 나와서 글을 쓰고, 상담사로 근무할 곳에 지원하기도 하고, 점심 식사 후 산책도 하고, 책을 읽고, 전공 서적을 읽은 후에 중요한 요점을 다시 노트로 옮기고, 노트에 적은 것을 다시 워드로 쳐서 보관하고 있다. 또한 읽은 책 내용 중 좋은 글을 같은 방식으로 저장하고 있다. 헤드헌팅 업무도 하고, EAP 상담도 진행하고, 휴먼 에이드라는 인터넷 신문에 글도 쓰고, 명상 지도도 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단지 할 뿐이기에 그 속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 단지 오늘 이 순간을 사는 것 자체가 주는 큰 행복감이 있다.
6시 조금 이전에 퇴근하여 집까지 약 3시간에 걸쳐 걸어서 오기도 하고, 일찍 귀가한 후에 저녁 먹고 두 시간 정도 걷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바쁘지만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다. 지금의 이런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