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50 플러스 센터에 걷기 프로그램을 제안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당헌천과 중랑천 길을 걸었고, 올해는 노원구 내 서울 둘레길과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6주간 진행하는 걷기 프로그램이 다음 주에 막을 내리게 된다. 참석자분들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싶어서 월드컵공원, 하늘 공원, 노을 공원을 걸을 계획이다. 주 1회, 약 3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준비하여 함께 걷고 있다. 첫날 걷기에서 조금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매주 걸으며 조금씩 체력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걷기 프로그램 진행하는 보람도 느끼고, 그분들의 웃음을 보며 나 역시 미소를 짓고, 그분들의 수다를 들으며 나 역시 수다꾼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이런 변화된 모습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노원 50 플러스 센터에서 걷기 프로그램 제목을 ‘느림보 걷기’로 정하였다. 처음에는 제목이 다소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센터에서 결정한 이름이고 진행하는 사람으로서는 굳이 제목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참석자분들이 만족할만한 길을 안내하면 되는 것이다. 참석자 분들께서는 제목만 보고 천천히 걷는 프로그램인지 알고 참석을 하였는데, 결코 느리지 않고 코스도 그다지 쉬운 코스가 아니라고 웃으시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길을 걸으며 그 이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느림보 걷기’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속도를 의미할까, 아니면 걷는 사람의 여유로운 마음을 뜻하는 것일까?
진행하는 첫 번째 주 삼각지 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는데, 출근시간과 겹쳐서 사람들이 많고 붐볐다. 대부분 사람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빠르게 걷거나 뛰어가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등산화를 신고 걷는 자신이 이방인이 된 느낌이고, 괜히 그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삶의 전선으로 뛰어가고 있는데, 나는 한가롭게 등산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같은 상황에서 아주 정반대의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일을 하러 가는데, 놀러 가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상대적 희열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상황인데 그분들 얼굴을 보기 미안하고, 그분들의 바쁜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이 올라왔다. 딸과 사위도 저들 중 한 명일 것이고, 손녀도 언젠가는 저들과 함께 바쁘게 살아갈 것이다.
뛰어가는 모습과 긴장된 얼굴들을 보며 ‘경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군가보다 앞서 가야 하고 빨리 가야 하는 경쟁과, 경쟁에서 뒤처지면 도태가 되는 냉혹한 사회의 일면이 떠올랐다. 나 자신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누군가 보다 많이 움켜쥐려 했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하기도 했다. 자신과의 경쟁이 아닌 남과의 경쟁,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강박적 사고와, 이기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했던 적이 있다. 사회와 가정에서 인정받고, 주위에서 인정받고, 뭔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니 그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어도 나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나의 그릇에 비해 지금처럼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고 고마울 따름이다. 각자 삶의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크기를 모르기에 무리한 도전을 하고 욕심을 내기도 하지만, 크기보다 큰 욕심은 결국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원래 크기만도 못한 밥그릇을 겨우 손에 움켜쥘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큰 욕심은 자신의 밥그릇 자체를 깨어버릴 수도 있다.
삶의 주기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과정을 순조롭게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삶의 과제이다. 하지만, 어떤 삶의 주기에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 에릭슨 (Erik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삶의 과제는 나이에 따라 8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신뢰감 대 불신감, 자율성 대 수치감,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정체감 대 역할 혼미, 친밀감 대 고립감, 생산성 대 침체 감, 자아통합 대 절망감. 이 중 어디에도 ‘경쟁’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나이에 맞게 성취해야 하는 과제만 있을 뿐이다. ‘경쟁’이 아닌 올바른 성장을 위한 ‘삶의 과제’만 있을 뿐이다. 각 단계에 맞는 과제를 잘 수행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시는 분들의 연령대를 보면 40대 후반에서 60대로 기본적인 사회적, 가정적 역할을 어느 정도 마치신 분들이다. 에릭슨의 ‘자아통합 대 절망감’의 단계에 들어선 분들이다. 이 단계에서는 삶을 뒤돌아보고 삶의 의미에 대해 음미하는 노력을 통해 통찰과 지혜를 얻는 시기이다. 만약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절망감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느림보 걷기’는 아주 적합한 제목이다. 걷기의 속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여유를 뜻하고 있다. 모든 번민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걸으며 삶의 통찰을 통한 지혜를 체득하라는 의미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으면, 자연의 소리가 더욱 잘 들리고, 발의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고, 남의 얘기에 경청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은 모든 것을 녹여낼 수도 있고, 담아낼 수도 있으며, 숙성시킬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는 요술 항아리 같은 것이다.
‘느림보 걷기’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호안 우보(虎眼牛步)’이다. ‘호랑이 눈에 소걸음’이라는 뜻으로, 눈을 밝게 뜨고 여유롭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호안(虎眼)’은 성성(惺惺), 즉 ‘깨어있음’이고, 우보(牛步)는 적적(寂寂), 즉 고요함이다. 고요하지만 꿈속에서 헤매지 않는 깨어있는 상태이고, 깨어있지만 들뜨지 않은 상태이다. ‘호안(虎眼)’은 정견(正見)으로 세상과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며, 우보(牛步)는 정업(正業)과 정명(定命)으로 일상 속에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길을 걸으며 밝은 눈으로 쓸데없는 번민을 쳐버리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느림보 걷기’는 참으로 좋은 이름이고, 이 프로그램에 아주 적합한 이름이다. 작명한 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센터에 감사를 드리고,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며 걷고 있는 참석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