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03]
고통은 성장을 위한 선물이다.
일시: 2019년 11월 25일 1930-2130
코스: 남산
날씨: 영상 4도, 날씨 맑음,
거리: 9km
누적거리: 30km
차가운 날씨에 길동무들과 함께 밤에 남산을 걸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찬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다. 추운 겨울에도 방한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 걸으면 겨울 걷기의 즐거움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빨리 걸으면 온 몸에 온기가 느껴지면 활력 또한 느낄 수 있다. 남산 타워의 조명이 녹색으로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이다. 남산타워 조명은 미세먼지 농도를 4단계로 표시하여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세 먼지가 만들어 준 변화이다. 모든 변화는 종(種)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께서 다치셔서 한 달 내내 병간호를 하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다고 하였다.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볼 수가 있고, 돌아가시기 전의 얼굴에서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 부모님의 입관 전 모습이 떠올랐다. 두 분 모두 얼굴이 너무 평온했다. 마지막 모습이 평온한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분은 이혼과 아이들을 홀로 키우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를 공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어떤 말로도 그 어려운 환경을 견뎌낸 심정을 위로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이미 자신 스스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시련은 작은 시련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힘든 세상과 싸우며 회피하지 않고 직면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신의 선물이다.
어떤 분은 큰 병을 앓았고,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지만, 그 병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병과 친구가 된 것이다. 그 친구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몸이 과로하면 미리 신호를 보내 줄 것이고, 잠이 부족하면 잠자라고 부탁을 할 것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팠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을 아끼라고 조언을 해 줄 것이다. 병은 적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나타난 좋은 친구이다. 내게 혈압이 좋은 친구이듯이. 하지만, 이 친구와 너무 가깝게 지내면 안 되고, 조금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분은 기러기 가족생활을 10년 이상 하였고, 다시 모여 살면서 서로 맞추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그 이상의 세월을 떨어져 살면서 각자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든 일들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심신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변화를 서로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중년의 나이에 걸으러 나온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건강이 허락되고, 걸을 수 있는 다리와 근육이 있고, 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고, 뒤풀이에서 술 한잔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있고, 걸으러 나올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또한 그분들이 축복받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힘든 삶의 여정을 견뎌낸 삶의 진정한 용사이고 투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버리지 않고 지켜내고 버텨낸 사람들이다. 세상은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 힘들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삶의 고통은 우리에게 마음의 확장과 강한 심리적 근육이라는 큰 선물을 가져다준다.
최근에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다. 상담을 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자 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실에 찾아왔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표현이고 의지이다. 이런 분들은 상담을 통해서 삶의 의지를 다시 되살려 삶의 전선으로 나간다. 고통을 잘 견뎌내고 주변의 지지가 있다면, 그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고 직면하며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낸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어제 함께 길을 걸었던 길동무들과 대화를 나누며 ‘삶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온 과정을 들으면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살아있게 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