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15]

변화의 성장

by 걷고

일시: 2020년 1월 1일 (한강변 – 노을 공원 - 메타세콰이어길14km)

2020년 1월 2일 (남산 9km)

날씨: 영상 2도, 날씨 푸근하고 약한 미세먼지

거리: 23km

누적거리: 17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 늘 다니던 한강변, 노을공원, 메타세콰이어길을 길동무들에게 안내하였다. 노을공원 올라가는 585 계단을 오르며 허벅지와 종아리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발바닥과 발등에 느껴지는 압박감도 느꼈다.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오늘은 다른 길동무가 안내하는 남산길을 다녀왔다. 남산길은 길이 너무 많아 여러 번 갔어도 갈 때마다 코스가 달라 길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걷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길 포장이 잘 되어 있고, 계단도 잘 관리되고 있으며, 화장실 시설도 좋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 조명도 아름답다. 오늘 길은 계단이 많아 밤에 걸으면서도 땀이 제법 났다. 기분 좋은 땀이다.


요즘 잠을 설치고 가끔 무기력증도 느껴진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쉽게 피로를 느껴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몸이 개운하지도 않고 몸살 걸린 것 같은 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요즘에는 별 다른 스트레스가 없다. 새해에 상담을 진행할 센터도 결정되었고, 개인 내담자들도 연락이 오고 있다. 명상, 걷기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강의 제안도 준비하고, 조용히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심리적으로 어떤 불편함을 느끼기에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주변 환경을 살펴보았다. 변화라면 몇 개월 전부터 손녀가 우리 집에 같이 머물고 있으며, 아내와 함께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딸이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오면 딸아이가 손녀를 돌본다. 둘이 살다가 네 식구가 살게 되고, 손녀가 온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 최근에 발생한 변화이다.


나는 소리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손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아이의 우는 소리와 짜증 내는 소리, 장난감 소리, 아내와 아이의 얘기 소리, 음악 소리 등이 섞여서 잠시도 끊기지 않는 소음이 신경에 거슬린다. 다른 하나는, 아내가 홀로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기에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집안에 같이 머물며 돕고 있다. 나 혼자 편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거나 외출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또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주 멈추고 아이를 돌보게 된다. 일을 시작하면 빨리 끝내야 하는 성격 탓에 이런 일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TV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손녀가 온 후에 아이가 자기 전에는 TV를 틀지 않기로 약속을 해서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없는 것도 불편했던 것 같다. 이런 일들로 인해 불만이 쌓였던 것 같고, 아내나 딸아이에게 얘기할 수도 없어 혼자 참아왔던 것 같다. 결국 아이와 함께 지냄으로써 발생한 환경의 변화가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 아이는 잠이 들고, 아내는 소파에서 휴대전화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마음이 편하고 차분해졌다. 마음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바꿀 능력을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예지를 주시옵소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상황에 대한 순수한 수용이 필요하다. 어떤 판단, 편견, 감정, 생각을 제외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자신이 변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변화로 같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 불편함을 안고 살아갈지, 아니면 변화를 하여 평온함 속에 살아갈지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이런 변화를 ‘작은 자아’는 죽고, ‘큰 자아’가 태어난다고 한다. 변화는 ‘과거 자기’의 죽음이고, ‘현재 자기’의 탄생이다. 과거와 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성장하거나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사각형을 오각형에 끼워 넣으려는 어리석음과 같은 것이다. 사각형을 깎아내어 오각형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훈련과 인내, 그리고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손녀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손녀와 귀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면의 불편함을 통해 성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번뇌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고 한다. 번뇌를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디딤돌로 삼아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면의 불편함을 잘 관찰하고 수용하는 훈련을 통해서 사소한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근육을 생성시킬 수 있다. 손녀의 방문이 아이의 성장과 동시에 나 자신의 성장에 큰 디딤돌이 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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