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16]

‘작은 나’ vs ‘큰 나’

by 걷고

일시: 2020년 1월 3일 (불광천 한 바퀴 9km)

2020년 1월 5일 (위례 둘레길, 객산 9km)

2020년 1월 6일 (도림천 7km)

날씨: 영상 3도, 이슬비가 촉촉이 내림 (20200106)

거리: 25km

누적거리: 20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겨울 날씨가 마치 늦가을 느낌이 납니다. 너무 푸근하여 추위를 느낄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추위가 없어지면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다고 해서 걱정을 합니다. 사실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어떤 농작물이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자연재해가 오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는 사실이 뭔가 허전하고 아쉬울 뿐입니다. 추운 겨울에 방한복 잘 챙겨 입고 한강변을 걸으며 바람을 뚫고 걷는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이 아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네 삶은 추울수록 힘들다고 하니 저의 얘기는 사치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위례 둘레길을 걸으며 만추를 맞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낙엽 카펫이 온 천지에 깔려있고, 그 길을 우리는 마법의 방석을 타고 하늘을 날듯이 가벼운 발걸음을 하였습니다. 도림천 길을 한겨울에 내리는 이슬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걸었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요즘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과 떠드는 수다가 새롭고 즐겁습니다. 스스로 조금 망가지니 주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도 좋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어지간히 자신이 만든 틀 속에 갇혀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 분들이 저로 인해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즘 회자되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그 노력 자체는 이미 스스로 ‘꼰대’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삶의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살아가는 재미가 더한층 즐거워집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틀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틀이 자신을 지켜오고 유지시켜 온 큰 힘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순간에는 그 틀을 부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소설 ‘데미안’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오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알 속에 있을 때에는 알이 깨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야 합니다.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 존재는 세상을 위해 그리고 온전한 삶을 위해 살아간다고 들었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과 다른 존재를 위해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우리에게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닌 온 우주와 모든 존재들을 위한 일입니다. ‘작은 나’를 부수고 ‘큰 나’가 되어가는 과정에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목표입니다. ‘소명’이라고도 하고, 불성을 본다는 ‘견성’이라고도 하며, ‘하나의 세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 세계를 하나의 큰 우주선이라 생각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위한 일이 남을 위한 일이 되는 ‘자리이타’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기도 합니다. 우주선이 안전하게 유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을 잘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편함이나 이익을 위해 타인과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그 영향이 바로 우주선 전체에 미치고, 결국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로 인해 상처와 위로를 받습니다. 칼 융은 인간은 대인 관계를 떠나서는 성장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사회적 관계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먹고살고자 하는 사회생활도, 좋은 결과를 내어 많은 소득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도 사람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에 돈, 명예, 권력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가끔 삶 속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돈, 명예, 권력’만 따르기도 합니다. ‘작은 나’는 조건을 중시하고, ‘큰 나’는 사람을 중시합니다.


요즘 저의 화두는 ‘큰 나’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 노력하기도 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버리기도 합니다. 많은 노력과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평생 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은 ‘여정’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정’은 과정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되어가는 과정이 삶이고 인생입니다. 길동무들과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이 스승임을, 길이 스승임을, 자연이 스승임을 알게 될 날이 오길 바라며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를 힘들게 만드는 길동무가 참다운 스승임을, 힘든 길이 참다운 스승임을,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참다운 스승임을 알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이 생각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모든 귀한 인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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