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일시: 2020년 2월 12일 (안산 – 홍제역 6km)
2020년 2월 15일 (북한산둘레길 13, 14, 15코스, 11km)
거리: 17km
누적거리: 39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겨울이 끝나가고 있고 곧 봄이 올 것이다. 봄이 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올 겨울이 겨울답지 못한 것이 괜히 안타깝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골에서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라 춥지 않은 겨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울답지 못한 겨울은 미성숙한 어른 같은 느낌이 든다.
비 오는 날 걸었던 안산길은 선계(仙界)의 비경을 본 느낌이다. 비로 인한 안개 자욱한 길을 밤에 비를 맞으며 걸으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환각의 세계에 빠져든 느낌이다. 이 세상에 있는지 저 세상에 있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또한 우산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어릴 적 우산 속에서 장난을 치며 안락함을 느꼈던 동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북한산 둘레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겨울 길이 느껴지지 않아 역시 아쉬웠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은 마치 늦가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둘레길 중간중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북한산의 경치는 왜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만하다. 중간중간에 설치된 계단은 허벅지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전망대에서는 안전하게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흙과 낙엽을 밟으며 춤추고 걷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맘껏 웃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언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길동무들과 걸으며 나 스스로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면의 부정적인 면들이 드러나는 중요한 순간들이다. 사람들의 언행이 나의 기준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물론 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그러워지지 못하고, 점점 더 꼰대가 되어가는 그런 기분이 다시금 나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든다.
길동무 중 한 분의 닉네임이 ‘그러려니’라는 분이 있다. 그 여성분은 늘 미소를 지으며 세상사 일 모두 ‘그러려니’하며 받아들이신다고 했다. 좋은 말씀이다. 내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이나 사람의 어떠한 모습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러려니’라고 수용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그러려니’라는 화두를 받았다.
상대방의 모습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라는 단순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진리가 있다. 상대방의 모습을 통해 떠오른 모든 생각과 감정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바로 내 마음의 투영이니, 판단이나 비판을 할 것이 아니고 ‘그러려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자신을 달래고, 수용하며 조금씩 변화를 통한 성장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 바로 그 순간이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길을 걸으며 건강을 다지고 이런 중요한 통찰을 할 수 있다. 일거양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