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일시: 2020년 3월 20일 (구파발역– 은평한옥마을 – 산골고개 생태연결로 – 녹번역)
거리: 15km
누적거리: 58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은평둘레길 3, 4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10km 정도 거리고 약 4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찾기도 했고, 안내판이 잘못 되어15km를 5시간에 걸쳐 걸었습니다. 혼자 길을 찾아가는 재미가 좋습니다.
진관사 근처에서 하나 고등학교를 보았습니다. 그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는 친구 B가 생각났습니다. 그 아들은 저와도 만나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는 친구로 아주 명석한 친구입니다. 수능이 연기될 수도 있다는 뉴스를 접하며 B와 아들이 떠올랐는데, 오늘 그 학교를 보며 다시금 B가 생각납니다. 한옥마을에서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드는 길에 친구 S가 연락이 와서 같이 걷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미 길을 걷고 있기에 합류가 쉽지 않아 아쉽다고 전했습니다. 갑자기 S도 보고 싶어집니다. B와 S, 저는 사회 친구로 오랫동안 귀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동시에 친구 D도 떠올랐습니다. 넷이 종종 만나 술 한잔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학교를 보고, 연락을 받고, 한 친구가 떠오르며 다른 친구가 떠오릅니다. 인연은 그래서 귀한 거 같습니다. 친구들 모습이 떠오르며 갑자기 막걸리가 생각났습니다. 불러서 같이 마시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함께 마시고 싶은 마음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빨리 길이 끝나기만 바라며 열심히 걸었습니다.
웬만해서는 걷다가, 쉬거나 마시거나 먹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 행동을 취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고,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 가는 길이고 중간에 헤매기도 하다 보니,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잠시 벤치에 앉아 쉬며 아내가 준비해 준 과일과 차를 마시는 여유 시간을 가져봅니다.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벤치에 짐을 내려 놓아 보았습니다. 스틱, 배낭, 텀블러, 과일이 제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사실 걷는데 더 이상 필요한 물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뭔가를 많이 소유하려고 기를 쓰고 살아왔는지, 저 자신이 안쓰러워집니다. 그래도 이제는 이런 소박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니 보상받은 느낌입니다.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전에는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었다 져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한때는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진달래가 만개하기를 기다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다림은 다른 희망이 없기에 그것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달래를 온전히 맞이한 것이 아니고, 진달래의 만개를 보며 저 자신의 만개를 기대하는 욕심을 지닌 상태로 진달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 진달래는 그냥 진달래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기대나 희망이나 욕구 없이, 그냥 진달래 자체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온전히 진달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목련 등 어떤 꽃이 피던 지던, 또 계절이 변해도 저와 너무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자연이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진달래는 더욱 예쁘고,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집 근처 순대집에 들려 혼술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 집이 맛 집이라고 얘기해서 20년 살아온 동안 한번도 가지 않았던 식당을 오늘 찾아갔습니다. 바로 집 앞 시장에 있는 식당입니다. 시장 내에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장사하시는 분의 얼굴을 보기가 괜히 미안해집니다. 여유롭게 등산 다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괜히 죄스럽기도 했습니다. 음식 맛에 별 기호가 없는 저는 그 순대가 맛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배가 고파 맛있게 먹고 마셨습니다. 맛있었습니다. 또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홀로 막걸리 한 병 마시고 힘내시라는 말씀을 뒤로 하고 귀가했습니다.
홀로 이런 여유를 즐겨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편안해서 좋습니다.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막걸리 한 잔 마실 수 있고, 친구들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서울심리지원 서남센터에서 다음 주부터 전화상담으로 상담을 진행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여유도 이번 주면 끝입니다. 어쩌면 망중한 (忙中閑)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 온 것 같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막걸리 마시며 친구 B, S, D에게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고 싶은 마음을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미끼용 사진입니다. 이 글 역시 친구들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이 글 역시 미끼입니다. 그만큼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친구들과 두 세 시간 정도 함께 걷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 좋겠습니다.
걷기에 관한 좋은 문구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