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42]

자가 격리

by 걷고

일시: 2020년 3월 27일 (집 – 한강공원 – 메타세콰이어길 - 문화 비축기지- 집)

2020년 3월 28일 (은평 둘레길 1, 2 코스; 봉산 – 앵봉산 - 구파발역)

거리: 19km

누적거리: 64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자가 격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가벼운 목감기와 코감기지만, 혹시나 다른 분들에게 피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4월 5일까지 자가 격리하고 있다. 덕분에 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가 격리하면서 손녀를 돌보는 모습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 아직 가족은 모두 별 이상이 없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감기약 자체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7,8년간 감기 없이 살아왔는데 코로나 19는 무증상 감염자도 있다고 하니 조심하고 볼 일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걷기 안내를 하고 있는데, 다른 분에게 부탁을 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먼저 약속을 만들고는 상황 얘기를 하고 추후로 약속을 미뤘다. 선배와 만나는 모임이 다음 주 금요일에 있어서 상황 얘기를 하고 연기 요청을 했는데, 그냥 진행하자고 한다. 금요일 오전에 다시금 연락을 해 볼 생각이다. 약속을 미루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선뜻 약속대로 만나자는 얘기하기가 어렵다. 산에 가도 사람들이 마스크 쓰지 않고 걷다가, 앞에서 사람이 보이면 마스크를 쓴다. 예전에는 걸으며 서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요즘은 서로 얼굴을 돌리고 지나간다. 세상이 코로나로 인해 많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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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시사 철’이라는 신문 칼럼에 ‘낙관주의 vs 비관주의’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을 읽었다. “현명한 사람, 덕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 옳다. 다만 그것에 대한 반응만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절대 굴하지 않는 낙관주의를 바닥에 깔고서 말이다.” 이런 글과 함께 베트남 전쟁 시 포로수용소에 갇힌 미 해군 파일럿 제임스 스톡데일의 사례를 함께 소개했다. “대부분 포로들은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거라는 턱없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절망에 빠져 죽었다. 반면 가장 깊은 곳에 낙관주의를 품되,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혹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철학으로 무장했던 스톡데일은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가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적절한 의미 있는 글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부 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대중 모임 안 가기 등이다. 서로를 위해 이런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야 한다. 감염당하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감염시키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의무이다. 그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길을 걸으며 든 생각은 ‘면역 강화’를 위한 심신 운동과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홀로 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성찰’이 너무 부담이 된다면 자신의 나쁜 습관 하나 버리거나, 아니면 좋은 습관 하나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덕분에 아내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받았다. 돈 벌어 오지 않아도 된다며 평생 짊어졌던 책임감을 해방시켜 주셨다. 상담 센터 지침에 따라 지난주부터 원하는 내담자에 한하여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사례도 별로 없고, 할 일도 별로 없다. 아내가 밖으로 나가라는 말씀 하시지 않고, 식사 차려 주시고, 집에서 전화 상담이라도 잘하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나와서 입에 풀칠은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사회생활을 마치고 인생 2 막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큰 부담은 없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운영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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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일 년에 여름, 겨울, 두 차례 안거 기간을 각각 3개월씩 보낸다.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는 것이다. 화두와 씨름하며 작은 자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정진한다. 침묵하고 하루에 14시간 이상 주리를 틀고 앉아 참선 삼매에 빠진다. 어떤 상황에 의해 마지못해 격리당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격리시킬 수도 있다. 그런 격리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보았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무엇을 바꿔야 할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쁠 때는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시간이 많이 나면 시간 관리를 잘 못하고 TV 영화를 보며 killing time 하고, 술을 마시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이삼일이 걸리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다. TV 영화를 늦게까지 보니 자연스럽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술은 마시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많이 마시고 싶어도 마시지 못하니 저절로 술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 것이다.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일찍 잠들고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별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지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걷는 것이다. 아무 곳이나 걷거나 남을 따라 걸었는데, 이제는 홀로 길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붙이는 것이 좋겠다. 지난주에 은평 둘레길 3, 4 코스를 걷는데 4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한 코스를 5시간이나 걸려서 걸었다. 중간에 헤매면서 걸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왕 시간이 주어졌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사모님의 윤허도 받았으니, 여러 코스를 홀로 다니며 길을 찾고, 하나하나씩 완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만 해도 걸을 코스가 너무나 많다. 은평 둘레길, 서울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한양 성곽 순성 남한산성 둘레길, 남산 둘레길, 관악산 둘레길 등등. 코스가 서로 겹치는 경우도 많겠지만, 이 코스를 하나하나씩 완주하여 사진도 남기고 걷기 후기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면 한 가지 나쁜 습관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주 2일은 전화 상담하는 날이다. 주 2일은 홀로 걷기 하고, 주 2일은 걷기 동호회 활동하고,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는 날로 정했다. 하루 종일 상담하거나 걷는 것이 아니기에 남은 시간에 책도 보고 글도 쓰면 된다. 일찍 일어나니 아침 명상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삶이 좋다. 명상, 상담, 걷기, 독서, 글쓰기는 좋아하고 평생 할 수 있는 할 거리, 일 거리, 놀 거리이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할까? 친구들과 가끔 막걸리 한 잔 하고, 수다 떠는 재미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런 한가한 얘기를 하니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지혜롭게 힘든 시간을 버텨나가며 좋은 날을 맞이하길 기원한다. 산에는 꽃이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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