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둘레길 3, 4 코스
일시: 2020년 3월 29일 (은평 둘레길 3, 4 코스)
거리: 12km
누적거리: 65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서울의 둘레길이나 지자체별 조성된 길을 따라 걷기로 결정하고,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은평
둘레길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저께 1, 2 코스를 걸었고, 오늘 3, 4 코스를 걸었다. 혼자 길을 찾아
나선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라 걷다가 길을 익힌 후 홀로 걷는
방식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길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걷기 학교’를 준비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서울의 구석구석 여러 길을 직접 찾아 걷고 길을 익히며 길에 대한 느낌이 있어야 다양한 루트를 구성할 수 있다.
삼삼오오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정자 등 쉬는 공간에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드민턴장에는 사람들이 경기를 하고 있고, 한 구석에서는 바둑과 장기를 두는 사람들도 보인다. 다만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느낌이 든다. 쉬면서 아내가 준비해 준 김밥과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핸드폰에 기록된 지난번의 루트를 보니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동네 주민인 듯한 분에게 물어봤더니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다고 한다. 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핸드폰을 봤는데, 점점 지난번 걸었던 루트와 멀어지고 있어서 다시 500미터 정도를 되돌아갔다. 표식대로 걸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혼란스럽다. 북한산 둘레길과 은평 둘레길이 겹치는 구간이어서, 북한산 둘레길의 길 안내 말뚝과 밧줄을 보고 따라갔다. 가다 보니 이 길이 맞는 길이다. 오히려 지난번 걸었던 길이 잘못된 길이었다. 한번 잘못된 길을 바른 길로 알고 그 길을 찾으려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한 번의 실수가 반복되면, 실수가 일상이 되고 정상적인 행동이 비정상적인 행동이 된다.
구기동 휴식 장소에서 잠시 쉬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외국인 부부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놀러 왔다. 어린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 앞바퀴를 자물쇠로 잠그고 있어서 자주 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자전거의 안장을 별도로 분리하여 어깨에 메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을 못 믿는다는 것인가? 자물쇠를 잠그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안장을 따로 분리하여 둘러메고 가는 사람은 처음이다. 불신의 시대다. 안타깝다.
길을 걸으며 말을 걸어오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꽃들이다. 꽃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을 걸어온다. 예전에는 그냥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갔는데, 금년부터 이상하게 그들의 얼굴을 보고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그런 변화가 좋다. 사진 찍느라 걷는 페이스는 불규칙해지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홀로 걷는 길은 이래서 좋다.
다른 한 가지는 길 옆 카페 문 앞에 써놓은 ‘맥주 한 잔 하고 가세요.’라는 문구이다. 땀도 나고 갈증도 있었다. 또한 인적이 드문 곳에 홀로 호젓이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는 사치를 누려보고도 싶었다. 결국 하지는 않았다.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보다. 시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걷는데 마시고 싶은 맥주를 마시지 못한 자신이 바보스럽다. 왜 그랬을까? 과정을 즐기며 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건만, 맥주 한 잔 하자는 자신의 사소한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걷기 마친 후 아내에게 전화해서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런 사치는 반드시 누릴 것이다.
홀로 길을 걷는 재미가 점점 더 좋아진다. 길에 대한 느낌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길마다 특징이 있다. 어떤 길은 주변의 꽃들로 장식된 길이다. 어떤 길은 정감이 느껴지는 돌계단이 있다. 어떤 길은 데크길로 또는 바위길인데, 양 옆에 다양한 꽃들이 피어 그 길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길과 친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홀로 걸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사진 찍고, 길 감상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걷고 있다. 다만 오늘 걷고자 하는 길은 가능하면 끝까지 걷고 싶다. 이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도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다. 참 즐거운 하루였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