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

켄 윌버 (Ken Wilber) 지음

by 걷고

모든 종교와 철학은 ‘행복한 삶’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이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불행’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경계가 생겨나며 행복만 추구하고 불행을 회피하려고 한다. 또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무시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타인의 삶을 짓밟는 경우도 있다. 즉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와 ‘너’의 경계가 생겨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의 몸, 마음, 생각, 사회적 지위, 이름, 나이, 학력 등이 ‘나’인가? 켄 윌버는 저서 ‘무경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계는 피부라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피부 안의 것을 ‘나’라고 하고, 피부 밖의 것은 ‘나 아닌 것’이라고 한다. 또한 ‘나’ 안에도 경계가 만들어진다. 즉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자아 안의 수용 불가능한 모든 측면을 외적인, 이질적인, ‘나 아닌 것’들처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런 것들은 ‘그림자’로서 밖으로 투사된다. 자아 내부에 또 하나 경계가 세워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협소해지고, 반면에 위협적인 ‘나 아닌 것’들은 더 많아진다. 페르소나 수준이 확립된다.” (‘무경계’ 본문 중에서)


‘나’ 안에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의 영역이 좁아질수록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자신 외의 것들을 적대시하거나 혐오하고 외롭게 살아가며 성 밖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행복할 수 있는 여건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자기 안에 갇혀서 자신만을 못살게 만든다. 그 반대로 경계를 확장할수록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나의 경계’는 스스로 확장할 수도 있고, 축소시킬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뚜렷한 ‘나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불행의 이유는 ‘경계의 설정’으로 인한 대극의 생성, 양극단의 설정에 있다. 즉 ‘나’와 ‘너’,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장단’, ‘흑백’, ‘상하’ 등의 분별, 이분법적인 사고가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한쪽만을 추구하고, 다른 쪽을 회피하려는 생각으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하게 된다. 불교의 교리는 ‘양변을 여읜 중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한다. ‘중도’란 양변(兩邊), 즉 양 극단을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양극단이란 것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책상 위해 물병이 있다. 상하가 존재한다. 물병이 책상보다 ‘상’에 위치하지만 지붕보다 ‘아래’에 있다. ‘상’이 ‘하’가 된 것이다. 책상은 물병보다 ‘아래’에 있지만, 바닥보다 ‘상’에 있다. 상하는 우리가 편리에 의해 만들어 놓은 언어의 장난에 따른 허상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상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극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존재하지 않는 양극단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속으며 허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만든 경계,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

풍경 (1).jpg


‘경계’는 자신을 위해 만든다고 얘기하지만 실은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COVID 19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힘들어하고 있다. 각 나라들은 국경을 봉쇄하고 자국민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총기를 사느라 줄을 서고 있다고도 한다. 자신의 가족만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다. 또한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생필품 사재기를 한다. 모두 자신만의 국민, 사회, 가족을 위한 명분으로 다른 국민, 사회, 가족을 적대시한다. ‘나’와 ‘너’의 경계를 설정하며 ‘나의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가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상상을 해 본다. 과연 지금처럼 자국민만 보호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가족들만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하다 모든 사람들이 죽고 ‘자신의 가족’만 살아남는다면 그 가족은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혼자 상상해 본다. 모든 국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봉쇄하지 말고, 온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한 달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위한 자가 격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출입국 통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며 ‘자가 격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각 나라들이 굳이 출입국 통제를 할 필요가 없어지며 그 역량을 치료와 예방에 쏟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의료진들과 의료장비를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하면 어떻게 될까? 각자도생의 삶을 위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또는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 서기 하지 말고, 기본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들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한 달간 구매를 하지 않으면 어떨까?


어쩌면 이번 COVID 19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와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세상을 만들어 가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삶의 철칙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즉 ‘나’라는 경계에서 벗어나서 ‘너’라는 경계가 사라진 ‘무경계’의 삶을 살아가라는 귀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 지하철은 고액 연봉을 받는 월스트리트 금융맨이건 일용직 노동자건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그런 지하철 풍경이 최근 코로나로 바뀌고 있다. 지난 30일 (현지 시각) 뉴욕 타임스 (NYT)는 ‘코로나로 인해 뉴욕 지하철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거나 극빈층만 이용하는 수단이 됐다.” (조선일보, 20200401)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서 보듯이 우리는 삶의 수준으로 또 다른 경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경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계기로 이런 상황에서도 대중교통 수단으로 출근해야만 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가정에서도 편안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면 하는 것이다. 동시에 비록 소득의 수준으로 경계가 만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 자체에 대한 경계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경계로 인해 서로 반목하고 적대시하는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지구’의 정의를 백과사전에서는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로 인류가 살고 있는 천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주 전체로 보면 지구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 그 지구 안에서 땅덩어리를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땅도 부족해 하늘과 바다에도 경계를 짓고 확장하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지구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작은 한 나라, 사회 안에서도 경계를 만들고, ‘나의 땅’과 ‘너의 땅’으로 경계를 만들고 서로 넓은 땅과 집을 차지하기 위해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떤 경계를 만들고 싸우든, 지구는 그냥 지구일 뿐이다.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경계는 무의미할 뿐이다.


“세상은 온갖 유형의 특징과 표면과 선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는 단일한 무봉(無縫)의 장으로 짜여있다. 실재는 무경계이다. 실재가 무경계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모든 갈등이 환상이라는 사실은 밝혀진다. 이런 궁극적인 지혜를 열반, 해탈, 해방, 깨달음, 이 이해가 곧 양극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무경계’ 본문 중에서)


우리 존재의 이유는 바로 모든 존재의 행복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경계가 사라진 ‘무경계’를 체득하는 것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을 이용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방편으로 ‘무경계’의 일독을 추천한다.


“모든 사물이 자신과 모두의 선(善)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있고, 모든 세계의 근본 원리는 우리 가 사랑이라 부르는 바로 그것이며, 긴 안목에서 볼 때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 우주의 질서란 바로 이런 것임을 알았다. “ (‘무경계’ 본문 중에서)

무경계책.jpg








작가의 이전글서툰 언니의 인생 요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