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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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일시: 2020년 4월 5일 (은평 둘레길 5코스 외 7km)

누적거리: 67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아내는 매주 일요일 처갓집에 간다. 덕분에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하지만, 소파맨이 되었던 경우가 많아 가능하면 일찍 집을 나가 걷는다. 하루 종일 소파맨으로 보내면 자신이 너무 못난 사람이 된 느낌이 들고, 그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들기도 한다. 꼭 어떤 생산적인 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게으르게 살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역시 아침 식사 후 아내에게 운전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하며 먼저 집을 나섰다.


오늘 코스는 녹번역에서 백련산을 지나 증산역까지 가는 은평 둘레길 5코스이다. 4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너무 싱겁게 끝난 느낌이 들어 불광천을 걷다가 되돌아가서 다시 봉산에 올라 조금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왔다. 상쾌하다. 은평 둘레길 오늘 코스는 아주 환상적이었다. 벚꽃, 진달래꽃, 개나리 등 꽃이 만개해있고, 생태연결다리에서 보는 백련산 풍경이 압권이다. 큰 도로를 가로지르는 생태다리 자체는 최근에 지어진 것들과 비교해서 조금 부족하지만, 건너편 백련산의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둘레길도 조성이 잘 되어 있고, 길도 부드럽고 편안하다. 이런 좋은 길을 지금 만난 것이 많이 아쉽다. 앞으로 자주 은평 둘레길을 걷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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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둘레길은 전반적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편안하다. 오르막 내리막도 있지만, 산에 오르기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하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며, 동시에 둘레길을 걸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3코스 중간에서 불광중학교로 가는 갈림길에 설치된 은평 둘레길 표지판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어서 혼란을 초래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그 역시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운동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넘어갈 수 있다. 다른 분들도 그 길을 걸으며 나와 같은 혼란과 함께 체력단련을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누군가가 언젠가는 관련 부처에 연락하여 시정을 요구할 날이 올 것이다. 어차피 운동하러 온 것이니,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백련산에서 증산역으로 내려오는 길이 아파트와 차도, 일반 상가를 지나 불광천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 길이 너무 지루해서 아쉬웠다. 다른 길로 안내해서 산길을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편안하게 불광천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지도를 보니 시내 통과를 하지 않고서는 불광천 접근이 어렵다.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는지 둘레길 조성하시는 분들께서 많은 고민을 하셨겠지만, 다시 한번 더 고민하셔서 좋은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불광천에 인파가 가득해서 마스크를 썼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다. 햇살도 좋고 벚꽃이 한창이다. 원래 불광천 벚꽃은 축제를 할 정도로 유명한 명소가 되었지만, 다른 곳처럼 금년에는 축제를 취소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벚꽃 놀이를 즐기고 있다. 중간중간에 설치된 텐트에서 손 세정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고 고생을 하고 있다 빨리 끝나길 바란다. 선거철이라 유세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차로 돌며 떠드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 뒤에 후보자 사진을 올려 돌아다니고 있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지지를 부탁하고 있다. 악수를 청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족들끼리 웃고 떠들며 걷고 있고, 애완견과 함께 걷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나 전동 휠을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을 떨치고 오히려 최대한 조심하고 지침을 지키면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는 이렇게 극복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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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씻고 나서 일기를 쓰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고맙다. 어느 누구나 어떤 일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일기가 남긴 기억들이 언젠가는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10년 전, 20년 전, 내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그 당시 사회는 어떤 일이 있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손주들이 이 일기를 보며 나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록은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될 때, 이 일기를 읽으며 마음으로 그 길을 다시 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진과 느낌과 상황을 가능하면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은 걸으며 1, 2, 2, 1을 생각했다. 하루에 1시간 명상, 2시간 독서, 2시간 걷기, 1시간 글쓰기를 하자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상담 외의 시간을 이렇게 활용하고 싶다. 시간이 많이 나면서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자칫 삶이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질 수도 있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점점 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할 일이 점점 더 없어질 것이다. 스스로 할 거리, 놀 거리, 일 거리를 찾지 않는 한 삶이 재미없어질 수도 있다. 상담도 시간이 지나면서 케이스가 없어질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홀로 재미있게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찾은 것이 바로 1, 2, 2, 1이다. 매일 못 지킬 수도 있지만, 일단 기준은 만들어 놓고 가능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며 삶을 너무 느슨하게 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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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 더위에 지칠 때 대나무를 날카롭게 칼로 다듬었다는 법정스님의 일화가 떠오른다. 홀로 암자에 지내시면서도 수행자로서 끝까지 당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신 것이다. 비록 법정스님처럼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기준은 갖고 살아가고 싶다. 일기 끝에 그날의 실행여부를 적어볼까? 너무 유치한 방법이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일기를 SNS에 올리고 있으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조금은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이런 특단의 조치도 필요하다.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사람 그릇에 맞는 방편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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