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47]

행복한 수학 공부

by 걷고

일시: 2020년 4월 7일 (집 – 월드컵공원 – 매봉산 – 문화 비축기 - 집, 10km)

2020년 4월 8일 (집 - 월드컵공원 – 문화 비축기지 – 집, 8km)

누적거리: 70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시인은 숫자를 모른다

수학도 계산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수학 공부다


일_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십_하루에 열 번 이상 크게 웃고

백_하루에 백자 이상 글을 쓰고

천_하루에 천자 이상 책을 읽고

만_하루에 만보 이상 대지를 걸으면


행복이 그대와 함께 하리니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행복할까

시인의 행복한 수학 공부 끝

(행복한 수학 공부, 시인 박노해)


이 시를 읽으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요즘 나의 삶이 바로 이렇다. 다만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는 부분이 걸린다. 하지만 걷기 길 안내를 하고 있는 일과, 최소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행동이 착한 일일 수도 있다. 비록 착한 일을 하지 않지만, 불선(不善) 한 일을 하지 않으니 이것이 착한 일 아닐까?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과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몸에 나쁜 행동과 마음가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괜한 합리화이고 억지 춘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처럼 살고 싶다는 궁한 마음에 이런 합리화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낸다.


열 번 이상 크게 웃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손녀를 보며 자주 웃게 된다. 손녀의 손짓 발짓 모든 행동이 너무 사랑스러워 얼굴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손녀의 언행이 우리 부부를 웃게 만들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며, 자연스럽게 업무 분장이 되며 상호 협력을 하는 화합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그 외에도 웃게 만드는 것이 두 가지나 더 있다. 하나는 아내 없는 시간에 홀로 TV를 보면 어떤 프로그램을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진다. 동시에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 많이 웃게 된다. 홀로 있어도 웃고, 함께 있어도 웃는다. 또한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걸으면 웃는 일이 많아진다. 그것도 큰 소리로 웃게 된다.


걷고 나면 후기를 쓰고, 개인적으로 걷기 일기를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최소한 100자 이상은 된다. 그 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으니 여러 상념들이 떠오르고, 그런 단상을 정리하여 글로 옮기기도 한다. 요즘에는 글감이 많이 떠오른다. 책을 읽어도 떠오르고, 신문을 읽다가도 떠오르고 길을 걷다가도 떠오른다. 한 가지 문제는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쓰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설픈 글을 쓰면서도 그 글을 열 번 이상 수정하는 작업은 더욱 귀찮다. 하지만, 달리할 일도 별로 없기에 그런 귀찮고 힘든 작업을 그냥 한다. 글을 쓰며 점점 머리가 커지고 있다. 쓸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기 때문이다.


천자 이상 책을 읽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별 할 일이 없기에 책을 읽는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읽기는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없고, 심지어는 읽었던 책을 처음 읽듯이 다시 읽기도 한다. 그 덕분에 같은 책을 새 책으로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행복감은 있다. 하도 기억에 남지 않아 독서 카드에 중요한 내용을 적어서 정리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필요해서 중요한 내용을 찾으려면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모두 뒤지거나 아니면 포기를 해야만 한다. 그래도 읽는다. 별 달리 할 일이 없기에.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하루에 만보 이상 걷는 일이다. 심지어 이 만보도 걸을 수 있고, 삼 만보도 걸을 수 있다. 머리 쓰지 않고 몸으로 하는 단순하고 힘들지 않은 일을 잘한다. 걷기는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걸으면 에너지가 더 생기며 스스로 충전이 된다. 그리고 가끔은 좋은 길을 걷기 동호회 회원들에게 자랑하며 안내를 한다. 사람들이 그 길이 좋다고 말하면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길을 홀로 걷다 보니 이제 길과 많이 친해졌다. 주변의 꽃들과 나무, 정자, 낙엽, 나무 계단, 돌다리, 나무 펜스, 길 표식 리본, 바람 소리, 햇빛, 구름, 시원한 바람, 비 등과도 친해졌다. 그래서 어떤 계절, 어떤 날씨에도 걷는 게 별로 두렵지 않다. 가끔은 꽃들과 풍경들이 말을 걸어와 잠시 멈추어 서서 얘기를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놈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긴 평일 대낮에 홀로 걸으며 웃고, 얘기하는 것을 보니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박노해 시인은 자신이 가르친 수학 공부의 공식대로 살면 행복하다고 했다. 비록 수학 각 단계마다 한두 가지 걸리는 문제는 있지만, 스스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는 뻔뻔함이 있기에, 그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데, 혼자 행복하다니 그분들에게 많이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절일수록 그 시인의 말씀처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충분히 혼자 할 수 있고,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삶의 활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은 지금-여기에 있다.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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