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인공인 상일형을 그와 인연 있는 장례문화원에서 만났다. 네 분의 대통령과 법정 스님의 장례를 진행했던 대장원 송귀 유재철이 운영하는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왜 걷는가?’라는 주제와 ‘죽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우리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탄생을 전제로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대학 시절 영어회화 서클에서 만나 지금까지 40년 넘게 그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그 당시에도 남달랐다. 자신의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고, 육두문자를 많이 사용했으며, 선후배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기 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현대그룹에서 만 10년 근무하며 미국 지사와 해외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이후 사업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회사를 잘 다니다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다.
- 무슨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버지께서 나의 친화력을 보시며 사업을 권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에 식품을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사업가로 성공하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후배들에게 돈을 멋지게 쓰며 으스대고 싶었다. 미국에 수출하면서 L/C나 TT로 거래하지 않고 외상 거래를 했다. 현금으로 식품을 구입해서 미국 수입업자에게 외상으로 납품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약속을 잘 지키듯, 다른 사람들도 내게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외상 거래가 문제 되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젊은 객기로 인해 자초한 일이었다.”
-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느 날 00 냉면 세 컨테이너 납품 의뢰를 받았다. 그 냉면은 그 당시에도 다른 냉면보다 비쌌고 현금으로 구입해야만 했다. 수입 업체는 납품받은 후 그 돈을 갚지도 않고 회사를 부도처리했다. 그 주문 전에 이미 누적된 외상매출도 있었는데, 냉면 수출로 인해 적자는 아주 심각한 상태로 커졌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용인 땅 3만 평을 팔아서 은행 대출을 모두 갚았다. 국제 전문 변호사와도 상담을 했지만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설사 승소를 하더라도 돈을 받는 과정이 아주 길고 험난할 수 있다고 하였다.”
- 그 당시 심정은 어떠했는지?
“억울하고 화가 많이 나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 이후에 우연히 정신세계사에서 운영하는 ‘마인드 컨트롤 (Mind-Control)’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공부를 하며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 나갔고, 그 이후 불교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 그 이후에도 힘든 일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인지?
“그 후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30년 이상 알고 지낸 후배 회사에 근무하면서 현금 수억 원을 날렸다. 사람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재산도 날렸고, 부모님 땅도 날리게 되었다.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그들은 자신이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었다. 죽고 싶었고, 죽는 방법과 죽을 생각을 많이 했었다. 외국에 나가 안락사를 할까 생각도 했고, 속세를 떠나 절에서 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외에 부모님 돌아가신 후 동생과 유산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부모님 모시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은 노원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억울하고 분노는 치솟고 삶은 막막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며 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힘든 시기에 나와 다른 선배 K가 함께 자주 어울렸다. 자주 만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점에 사진과 물건들을 없애기 시작했으며, 지인들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또한 안락사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다. 어느 사찰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죽을 때까지 방 한 칸과 음식을 제공한다는 곳이 있다며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홀로 등산을 다니거나 서울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끔은 우리가 길동무가 되어 같이 걷고 술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 걷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지?
“몸의 얘기를 무시하고 돌보지 않아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 분노, 억울함을 술로 달래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몸은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몸이 나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홀로 대화하는 일도 많아졌다. 말하는 상대가 없음에도 홀로 얘기하고, 머리는 늘 복잡했다. 명상은 15분도 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움직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큰 병이 생길 경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체력에 가장 잘 맞고, 쉽게 할 수 있고,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운동이 걷기였다. 지하철 노인 무료승차권이 있어서 이동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노원구에 살고 있어서 근처 산과 둘레길 접근이 쉽다. 그때부터 서울 둘레길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가끔은 개천가를 걷고 있는 모습이나, 산에 핀 꽃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 소식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을 하면 중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오랫동안 하는 것이 그의 큰 장점이다. 지금도 서울 둘레길을 꾸준히 걷고 있다. 걷기를 심신 건강 관리의 가장 적합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걸으면 무엇이 좋고 또 무슨 생각을 하며 걷는지 궁금해졌다.
“걸으면 잡념이 사라진다.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고, 지금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하산하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친구를 목격한 후에 걸을 때 더욱 발걸음에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잡념이 많이 떠올라 염불을 하며 걷는다. ‘지금-여기, 아미타불, 우주 동체’를 발걸음에 맞춰 마음속으로 염불 하며 걷는다.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염불에 집중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참회도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알아차리고 염불에 집중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며 걷고 있다.”
- 걸으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건강이 좋아졌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요즘은 눈에서 피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몸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고, 몸이 시키는 대로 하니 몸이 점점 더 편해졌다.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에서 해방되면서 꽃과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도 생기면서 사고도 유연해졌다. 나 자신을 통제하거나 억압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거나 그 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원만해졌다. 약속을 변경하거나 지키지 않을 때에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어 편안한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세상을 부드럽게 보는 눈이 생겼다. 세상과 친해진 느낌이 든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세상사가 슴슴하다.”
- 무슨 의미인가?
“무든 일이든 반드시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최근에는 돼지고기로 장조림을 만들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고, 할 수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음식 만들고, 먹고, 설거지하는 과정 등 그 순간에 할 일을 그냥 한다. 좋거나 싫거나 하는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일을 한다. 불가(佛家)에는 ‘여여(如如)’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 지금 나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미황사 ‘참 사람의 향기’ 참선 수행 프로그램에 동참한 후에 받은 법명이 ‘정도(靜道)’다. 삶을 수용하고 매 순간 주어진 일을 하며 조용하게 나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사는 삶의 맛이 슴슴하다.”
걷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걷기 명상을 수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가 사는 세상은 예전과 같은 세상이지만, 이미 그에게는 다른 세상이 된 것이다. 걸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길이 어딘지, 또한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제주 올레길 걸을 때 가파도에 갔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펼쳐진 청보리 밭이 인상에 강하게 남는다. 그 길을 걸으며 모든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청보리 밭 위를 유영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모든 책임과 의무, 과거와 미래, 불안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훨훨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래서 그 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 서울 둘레길을 여덟 번 걸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까지 연결된 PCT (Pacific Crest Trail)는 거리가 4,300km에 달한다. 그 거리만큼 서울 둘레길을 걷고 싶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매일 20-30km를 걷는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무리다. 서울 둘레길로 그 거리만큼 걸으며 마음속으로 PCT를 걸었다는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서울 둘레길을 28회 걸으면 된다. 3, 4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주변 환경에 맞춰 편안하고 여유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균형 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교에서 중도(中道)를 중시한다. 중도(中道)는 양변(兩邊)을 여읜 것으로 양 극단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슴슴하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중도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걷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걷기란 업장(業障)을 소멸하는 방편이다. 업(業)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이미 만들어진 업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업을 더 이상 쌓지 않으며 살고 싶다. 그래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살아서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삶을 살고 싶고, 죽으면 ‘Dust in the Air’가 되고 싶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은 양 극단으로부터 벗어난 ‘중도’의 표현이다. 모든 고통은 한쪽으로 치우친 집착으로부터 시작되고, 집착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다.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은 선정 수행을 통해 저절로 그 빛이 드러난다. 그가 찾은 가장 적합한 선정 수행이 바로 ‘걷기’다. 집에서도 매일 정좌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 수행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수행을 통해 육신이 ‘사대(四大)’로 돌아가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보는 순간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진술한 ‘Dust in the Air’의 의미가 아닐까?
오늘 인터뷰를 장례문화원에서 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장례를 이미 장례문화원에 의뢰 해 놓았다.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그만큼 죽어간다는 의미다. 그는 매 순간 살면서 죽고, 다시 태어나서 죽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수행을 통해서 언젠가는 그런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을 통해 성불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