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귀’ 존중하기
일시: 2020년 5월 4일 (서울둘레길, 광나루역 – 올림픽공원역 18km)
2020년 5월 5일 (서울둘레길, 올림픽공원역 – 일원역 13km)
누적거리: 88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서울 둘레길을 혼자 걷고 있다. 걷기 동호회에서 길 안내를 위한 사전 답사를 겸한 홀로 걷기다. 아침 식사 후 아내가 준비해 준 도시락, 과일, 포카리 스웨트, 물 1통, 간식 등을 챙겨서 걷는다. 지난번에 헤맨 경험이 있어서 서울 둘레길 어플을 휴대전화에 다운로드하여 필요시 확인하고 길을 걷고 있다. 아스팔트나 도로 위의 표식, 길 안내판, 주황색 리본과 화살표를 보고 걷고 있다. 표식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살펴보면 어떤 표식이든 찾을 수 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경우에 휴대전화의 어플을 통해 방향을 확인 후 걷는다.
이틀간 걸은 길은 주로 평지나 도로가 많아서 주변에 볼거리가 별로 없고 햇빛에 노출이 심하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걷는다. 이런 모자는 햇빛 가리기에는 편하지만 바람이 불면 챙의 앞부분이 접히기도 한다. 시야가 답답하고 모자의 뒷부분이 배낭 윗부분과 닿는 느낌이 신경 쓰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캡을 많이 쓰고 다닌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깔려있는 길이 길어지면 가끔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 음악을 듣는다. 최근에 생긴 습관이다. 메론을 통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 무슨 음악이 좋은지 아직 잘 모르고,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그냥 협주곡을 틀어놓고 듣는다. 블루투스 이어폰도 있지만, 아직 귀에 꽂고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배낭 오른쪽 끈에 별도의 작은 주머니를 부착해서 휴대전화와 작은 지갑을 넣고 다닌다. 휴대전화를 주머니 안에 넣은 상태에서 음악을 혼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볼륨으로 켜서 들으며 걷는다. 그 재미가 괜찮다.
음악을 들으며 귀가 호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음악과 음식 취향을 물으면 나는 그냥 ‘막 입’, ‘막 귀’라고 얘기하며 아무 거나 좋다고 얘기를 해왔다. 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그런 대답을 할 때는 좀 더 자신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록 음악을 전혀 모르더라도 지금부터 음악을 들으면 된다. 자신의 귀를 ‘막 귀’라고 홀대하면 ‘귀’가 주인을 홀대할 수 있다. ‘막 입’이라고 얘기하면 ‘입’이 주인을 홀대하여 몸에 나쁜 음식을 좋아할 수도 있다. ‘막 코’라고 하면 ‘코’가 상한 음식을 신선한 음식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인을 혼낼 수도 있다. ‘막 눈’이라고 하면, ‘눈’이 세상 못 볼 것들만 보여줄 수도 있다. 몸의 일부인 감각 기관을 통해 경험, 지식, 느낌 등을 받는다. 감각 기관을 홀대하면 그 기관들이 주인을 망치게 만들 수도 있다. ‘막 귀’나 ‘막 입’이 된 이유는 주인이 ‘막 된’ 사람이기에 대접을 받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다. 감각 기관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위해 비싸고 좋은 음식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며, 그 음식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고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귀’를 위해서 ‘듣고 싶은 말’만 듣지 말고 자신을 위해 ‘듣기 거북한 말’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비상식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건전하고 밝은 대상을 향해 귀를 열라는 의미이다. ‘눈’을 위해서 볼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상큼한 자연을 향해 눈을 활짝 열고 자연과 친해져야 한다.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꼴사나운 짓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의미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기관들도 주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비단 자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존중받기 위해서 타인을 존중해야만 한다. 나의 자유, 권리, 행복을 중요시하듯, 타인 역시 자신들의 것을 중요시한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듯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된다.
자애 명상 수행 시 자신에 대한 행복을 기원한 후에 모든 존재와 타인에 대한 기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 행복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타인 행복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타인을 막 대하는 경우는 없다. 타인을 종 부리듯 하는 사람은 자신을 종 부리듯 하는 사람들이다.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감각기관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걸으며 얻은 귀한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