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55]

길 리딩과 후미

by 걷고

일시: 2020년 4월 30일 (휴일 걷기 리딩, 은평 둘레길 구파발역 - 불광역, 10km)

2020년 5월 1일 (월드컵경기장역 - 매봉산– 문화 비축기지- 하늘공원, 10km)

누적거리: 85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부처님 오신 날 걷기 동호회에서 길 리딩을 맡아서 진행했다. 은평 둘레길을 3회에 걸쳐 걷고 있다. 지난주에 1회 차를 마쳤고, 이날은 2회 차를 진행하는 날이다. 17명의 참가자들이 모여서 즐겁게 걸었다. 휴일이고 연휴가 시작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행보다 걷기가 더 좋은가 보다. 모두 건강한 분들이다. 동호회에도 운영진이 교체되며 새 운영진이 5월 1일부터 활동을 한다. 새로운 카페 매니저가 참석을 하였고, 카페의 기둥인 카페 창립자와 전국적으로 길을 리딩 하고 있는 분들이 참석해서 새 매니저의 시작을 축하해 주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이 길은 두 번 답사를 다녀왔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헷갈리는 지점이 있었는데, 참석자분 중에 이 길을 잘 아는 분이 계셔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리딩을 하는 것과 후미를 맡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리딩을 할 경우 후미에 오는 사람들까지 신경을 쓰기 위해서는 자주 뒤 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걷다 쉬는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피로도는 높아간다. 걸을 때 휴식을 취해도 앉아서 쉬지 않는 편이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과정이 오히려 힘이 들고, 그냥 서서 스틱에 기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뒤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완주하기 위해 그 사람들의 속도를 맞추다 보니 페이스가 무너지며 생각보다 지친 느낌이 든다. 리딩을 할 때에는 평상시보다 체력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휴일이나 주말에는 약 4시간 정도 걷고, 코스도 난이도가 조금 높은 코스라서 리딩의 체력이 더욱 중요하다.


반면에 후미에 설 때에는 가장 천천히 걷는 분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쉬지 않고 걷기에 페이스를 스스로 조절하며 걸을 수 있어서 체력 소모가 덜 한 편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리딩을 하지 않는 날에는 늘 후미를 자청해서 맡고 있다. 후미를 맡은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우선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에 걸으면 길동무들과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게 된다. 그것도 큰 재미지만, 이제는 그런 수다가 그다지 반갑지만 않다. 후미를 보게 되면 뒤에서 홀로 조용히 걸을 수 있다. 또한 자주 쉴 필요도 없이 천천히 사진도 찍고 주변도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대부분 선두는 후미 마지막이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후미를 보는 경우 쉬지 않고 꾸준히 그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다. 걷는 페이스가 끊기는 것보다 꾸준히 걷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고 체력 소모도 덜 한 것 같다.


은평 둘레길은 5월 9일에 3회 차를 걸으면 마무리된다. 5월 23일부터 서울 둘레길 157km를 16회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다. 회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좋은 추억도 쌓고 싶고 성취감도 느껴보고 싶다. 몇 명의 참석자가 끝까지 같이 완주할지는 모르겠지만, 리딩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다. 서울 둘레길을 회원들을 함께 완주하는 것은 여러 길을 한 달에 한번 정해서 안내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인내와 체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길 리딩을 위해 요즘 홀로 답사를 다니고 있다. 지난주에 휴대전화에 서울 둘레길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팀을 이끌고 길 안내를 하면서 가능하면 실수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길 눈이 밝은 편은 아니고 대충 방향만 보고 다니는 편인데,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앞으로 답사는 그 어플을 틀어놓고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걸어 볼 생각이다.


지도를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내 위치를 설정하여 걷는 것은 평상시 나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 것을 귀찮아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기기 사용법도 서툰 편이고, 기기에 의존하기보다 사람들에게 묻거나 그냥 방향만 대충 알고 걷는 편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나중에 걷기 학교를 개설하고 길 안내를 위한 사전 훈련도 되는 셈이다. 홀로 걷는 것과 팀을 이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홀로 걸으면 길을 헤매도 길은 길이니 상관없고 덕분에 새로운 길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나의 평상시 방식이다. 하지만 팀을 이끌고 길을 가게 되면 거리, 시간, 참석자들의 체력 등을 고려할 때 정확한 길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나의 체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는 어느 환경에서나 필요한 일이다. 고정된 것은 죽은 것이고, 변화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길을 걷고, 안내를 하며 삶의 원칙 하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좋은 일이다.


16회의 길을 함께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리딩으로서 참석자 모든 분들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책임도 있지만, 동시에 그분들의 마음도 살펴가며 끝까지 잘 이끌어갈 필요도 있다. 걷다가 지치거나 힘든 상황이 발생할 때 리딩으로서 역할을 잘하며 함께 마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 인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이 끝나고 나면 서로 성숙해지고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길동무가 나의 거울이 되어주고, 내가 상대방의 거울이 되어주며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힘들고 지치면서 말이 없어지게 되면 스스로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된다. 너무 지쳐서 모든 생각으로부터 저절로 해방될 수도 있다. 생각할 여유 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몸이 지치면 생각도 떨어져 나간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하루 걷기를 마친 후에 느끼는 성취감도 있고,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마시며 자신에게 멋진 보상을 선물할 수도 있다. 이런 성취감과 보상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몸을 통해서 배우는 편이다. 어리석어서 생각과 마음만으로는 배움이 와 닿지 않는다. 몸으로 체득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그 깊이가 깊어지고 완전한 나의 것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많은 힘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하나 삶을 배워왔다. 하나의 고통이 하나의 배움이 되었다. 명마는 채찍 그림자만 보고 달리지만, 둔마는 채찍질을 당해야만 뛴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둔마임이 확실하다. 둔한 사람은 고통이 약이다.


어제 친구가 동네에 놀러 와서 3시간 같이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친구가 좋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이 변하는 데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책, 여행, 그리고 삶 속의 시련이다.” 이 세 가지 조건들은 우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준다. 지금까지 고통을 통해서 배워왔다. 앞으로 길을 걷고 걷기 여행을 통해서 또 다른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최근에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으니, 이 또한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삶 전체,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모두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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