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054]

그냥 편안하다

by 걷고

일시: 2020년 4월 28일 (서울 둘레길 용마-아차산 코스, 12km)

2020년 4월 29일 (수요 걷기 리딩 DMC역 - 월드컵공원 – 문화 비축기지, 8km)

누적거리: 83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서울 둘레길을 걷고 있다. 걷기 학교 준비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걷기 동호회에서 걷기 리딩을 하기 위한 사전 답사를 위해 걷고 있다. 화랑대역에서 출발하는 용마-아차산 코스는 양원역까지 찾아가는 길 표식이 잘 안 되어 있어서 길 찾는데 조금 헤매기도 했다. 목동천을 따라가는 길목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표식이 사라져 버렸다. 목동천 끝나는 지점에서 신내역으로 안내하는 표식이 없어서 지도를 찾고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신내역에서 양원역 가는 길도 아파트 공사로 인해 길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양원역에서부터는 길도 좋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었다.


이번 길을 걸으며 둘레길 어플을 다운로드할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길을 걸을 때 일단 걸으며 상황에 부딪치면 해결해 나가는 편으로 사전 조사나 공부를 하지 않는 편이다. 사업을 할 때에도 일단 부딪치며 해결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늘 하는 일이 엉성하다. 대신 약간의 추진력과 무모함과 빨리 배우는 면은 있다. 늘 힘든 과정을 겪으며 몸으로 익히는 편이다. 사람들은 내가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이다. 사전 준비하는 과정이 불편하고 귀찮아서 그렇게 하는 편이다. 사전 준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막상 실전에 임하며 지쳐서 쉽게 포기할 수 있다. 나는 어찌 보면 현장형 사람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산티아고 갈 때에도 그렇게 걸었다. 책 한 권 본 것이 전부이고, 한국 산티아고 협회에서 진행하는 설명회 한번 다녀온 것, 그리고 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입출국 항공편과 생쟝 사무실 찾아가는 법까지만 확인하고 그냥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서 핸드폰에 입력하고, 그 사진을 보고 사진에 나온 마을 이름을 보고 따라서 걸었다. 모르면 물어서 걸었고, 대부분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어느 지역에 무엇이 유명하고 어떤 먹거리가 있는지 관심 밖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걷기 자체보다 주변 먹거리, 볼거리에 더욱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걷기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혼자 걷는 것은 헤매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안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서울 둘레길 어플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였다. 필요에 따라서 태도의 변화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게 대처하고 있다. 그런 변화도 좋은 일이다. 고정된 방식을 따르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저절로 퇴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문화화 되어 있는 핸드폰, 인터넷, 비대면 생활 등 세대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지 못하면, 그만큼 살기가 불편해진다. Early adaptor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문화적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면에서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어떤 부분은 딸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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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홀로 길을 걸으며 점점 걷기가 편안해지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체력적으로 좋아진 것이라기보다는, 길에 대한 또는 걷기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한다. 길이 힘들고 지루해도 그냥 길일뿐이라는 생각과 길과 친해진 느낌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어떤 길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치 인생과 같다. 삶이 힘들다고 해도 삶은 그저 삶일 뿐이다. 그냥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좋고 싫음도 없고, 힘들고 편안함도 없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경험이 만들어 낸 하나의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길도 그냥 길이듯, 어떤 모습의 삶도 그냥 삶이다.


또 한 가지는 마음이 많이 편해져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무감, 책임감, 부담 없이 길을 걸으니 그냥 걷는 것이 좋을 뿐이다. 힘든 것도 사라지니 걷는 것이 더욱 좋아지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눈에 많이 들어오고, 다양한 길의 모습도 보기 좋다. 가끔 음악을 듣기도 한다. 도시락 먹는 즐거움도 좋고, 여유롭게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코로나로 인해 상담을 당분간 진행하지 못해서 벌이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그냥 편하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낮잠 자고, 명상하고, 손녀와 놀고 지내는 요즘 삶이 그냥 편하고 고맙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삶은 많이 편안해졌다. 코로나 사태가 안정이 되면 상담도 다시 시작할 것이고, 강의나 프로그램 진행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에 따른 벌이도 생길 것이다. 벌이와 상관없이 그냥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치를 조금씩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더 편안해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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