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에 걷기 동호회에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녀에게 걷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왜 걷는가?’라는 주제로 책 발간을 구상 중이었던 시기였다. “몸에 발진이 있어서 걷기 시작했다. 꾸준히 걸으니 발진이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자신감이 생겼고, 걸으면 운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져서 마라톤을 도전할까 생각 중에 있다.” 가볍게 던진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아픈 상처를 편안하게 드러내며 진지하게 답변해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신체적,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얘기를 듣고 용기 내어 걷기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녀에게 책 발간을 위한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며칠간 고민 후 하지 않겠다고 답을 보내왔다. 자신의 이야기가 활자화되어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 얘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그녀의 답변이 기뻤다. 자신의 얘기를 대중에게 노출시키겠다는 용기가 고마웠다. 그녀에게 인터뷰에 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 자신의 성향에 대한 도전이다. 내 얘기가 활자화되어 통제를 벗어나 타인들에게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말은 하고 나면 사라지는데, 활자는 남아있고 활자가 주는 무게감도 있다. ‘지인’과 ‘지인 아닌 사람들’과의 경계가 분명한 편이다. ‘사회적인 나’와 ‘개인적인 나’의 선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틀과 경계를 허물고 싶다. 안 가본 길을 걷듯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었다. 익숙함에 길들여져서 인간관계를 잃어버린 경험도 있고, 이렇게 살다가는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익숙함의 벽을 넘어보고 싶었다. 걷던 코스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으면 느낌이 다르다. 혼자 걸으니 방향을 알 수도 있고, 길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길을 인지하며 걷는 재미는 따라다니며 걷는 재미에 비해 색다르다. 이것 역시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이자 도전이다.”
“걷기 동호회에 가입한 시기와 계기는?”
“2018년 7월에 가입했다. 걷기를 좋아해서 가입 전에도 혼자 걸었지만 꾸준히 걷지는 않았고 잠깐씩 걷는 정도였다. 2016년도에 피부 발진이 시작됐다. 의사도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으면 나아졌다가 끊으면 다시 발진이 올라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2018년도에 습진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피부과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기로 하고, 걷기 동호회를 알아보다가 가입하게 되었다. 주 3회 이상 꾸준히 걸었고, 처방해 준 약을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발진이 올라오는데, 2019년 봄에 약을 끊었는데도 올라오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씩 한 두 개 정도의 발진이 올라오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면 저절로 사라진다. 환우 카페에는 온갖 치료법이 등장하는데, 스스로 내린 결론은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며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치료법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 닉네임이 ‘재재’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 이름인지?”
“중학교 시절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재재’다. 가난한 집안 막내인 소년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기발한 장난을 좋아한다. 그런 기질을 지닌 아이가 어른과 형제들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를 그려낸 소설이다. 그 소설이 나를 건드렸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갔다. 20대부터 이 이름을 사용해왔다. 장녀로 부모님이 어려워하는 자식이었다. 가끔 애들이 나이에 맞지 않게 의젓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인들은 이름을 부르지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회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재재’라고 부른다. ‘재재’라고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자유와 편안함을 느낀다.”
“걸으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전에는 집순이였다. 집에 오면 움직임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걸으면서 몸을 많이 쓰게 되고, 생활습관이 변하게 되었다. 보통 새벽 2, 3시경 잠을 자는데, 12시 이전에 취침하는 수면 습관의 변화가 생겼다. 주 3회 이상 정기적으로 걸으면서 생활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고 치료 효과가 지속되었다. 좋아하는 활동만 하는 것으로는 뭔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과 회사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왔다 갔다 했고, 사람들도 일과 관련된 사람들만 만났다. 이러다가 집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동호회에 가입하여 걷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바운더리가 넓어지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행동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제는 결단을 내려 행동에 옮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벽을 넘게 된 것이다. 고민의 마지막 질문은 늘 같았다. ‘하고 후회하느냐? 아니면 하지 않고 후회하느냐?’는 질문이다. 시도한 후에 실패하게 되어 후회할 경우에는 여한이 없다. 하지만, 시도조차도 하지 않고 후회할 경우에는 그 찝찝한 감정이 끝까지 남는다.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말자는 의식 자체도 큰 변화다.”
길에서 그녀의 웃는 모습과 밝은 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걷기를 좋아하고, 걷는 순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녀에게 걷는 것이 왜 좋은지 물었다.
“스트레스나 생각이 많을 경우 걷는다. 그런 생각과 무한히 걷는다는 행동과의 접점이 좋다. 그 접점이 주는 힘과 맛이 있다. 걸으면 마음의 뜰을 걷는 느낌이 든다. 자신만의 세상과 우주를 걸으면 생각의 거품이 꺼지게 되고 불편한 마음도 가라앉게 된다. 걷기는 신체의 균형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준다. 우리의 삶, 마음, 생각, 몸의 균형을 잡는데 걷기가 최고다. 사회적 환경, 경제적 환경, 개인적 상황 등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몸을 일으켜 현관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나오기만 하면 된다. 현관 밖까지 나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 해 줄 수는 없지만, 나오면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 시작한 후 얼굴과 몸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다. 생기가 있고 힘이 있어 보인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걸으러 나올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걷기와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유유상종이라고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만 있었다. 좁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다양한 생각, 느낌, 감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각자 살아온 과정이 다른 자신들만의 얘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태도, 말, 행동을 보며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받치고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사람들 중 하나다. 모두 거기서 거기다. 세상이 넓다는 의미는 공간적 세상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만들어 내는 현상학적 세상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산이 떠올랐다. 휜 나무가 곧은 나무를 질투하지 않고, 꽃이 동물을 보고 자신과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다양한 동식물들이 모여서 산을 이루고 있다. 만약 산속의 나무가 모두 같은 모양이라면, 꽃이 모두 같은 꽃이라면, 바위 모습이 모두 정육면체라면 그 산을 찾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고, 그런 산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걷기 동호회에서 걷기 시작했지만,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삶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걷기 시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고,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차서 힘들었다. 지금도 몸이 힘들 때의 신체 반응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신체 반응으로 인해 힘들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단지 다리는 댕기고, 숨은 거칠어질 뿐이다.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우리가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적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자신과 세상은 무궁하다. 작고 좁은 자신만의 인식의 세계를 확장해서 좀 더 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 성장이고, 그런 성장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 인식의 확장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타인을 좀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바로 걷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존을 위해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만든다. 그런 경계 안에서 자신만의 안위를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경계 속에 갇혀서 고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위기를 통해 자신의 성을 부수고 넓은 세상으로 나와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번민과 고통이 수반된다. 성장을 위한 성장통이다. 이 성장통을 잘 견뎌내면 ‘나’와 ‘너’의 경계가 아닌 ‘우리’라는 우리 속에서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걷기는, 동호회 활동은 바로 이런 점에서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성장의 장(場)이다.
“걷기란 무엇인가?”
“걷기란 생활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고 행동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중도를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행동이다. 우리는 시계추 같은 반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현 상황은 시계 추의 움직임 속 어디쯤엔가 있다. 오른쪽과 왼쪽을 반복하고, 내려왔다 올라갔다 반복할 것이다. 이런 반복된 일상이 삶이라는 것을 알고 균형을 잡아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 걷기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며 마치 수행자나 철학자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진리를 너무나 쉽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그 진리가 삶 속에 체득되어 있다는 의미다. 잘 아는 사람은 알기 쉽게 표현한다. 시계 추, 인식의 확장, 단지 신체의 반응일 뿐, 마음의 뜰을 걷다, 익숙한 것을 벗어나기 위한 도전, 너와 나의 경계 허물기 등은 모든 종교인이나 수행자가 추구하는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마치고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쌀 국수와 맥주, 치킨을 먹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복지 서비스의 일환으로 도시락, 심리치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제공되고 있지만, 걷기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어려움의 이유도 다양하겠지만, 그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지치게 되고, 그 지친 감정과 마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걷기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사람들이 일단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어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심신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고, 그런 환경이 조성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걷기와 동호회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점점 더 확장시켜서 온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