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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 일기 0156]

아이 콘택트 최홍림 씨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106 - 20210107 16km

코스: 20200106 사천교 – 홍제천 – 월드컵공원 – 문화 비축기지 – 집

20200107 집 – 봉산 – 집

누적거리: 2,92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 한파 속에서 집 뒷산 봉산에 올랐다. 흰 눈을 보고 싶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속을 밟고 싶었고, 나무 위에 핀 눈 꽃을 보고 싶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 산에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있어서 눈 꽃은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눈 속에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어이없는 기대를 했지만, 그래도 이 추위에 산에 올라가서 땀을 흘리고 걸으며 루틴을 지키는 일상이 편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세상 존재의 일부분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 외에는 없다. 어제도 한파 속 봉산을 걸었다. 걷고 나니 활력도 생기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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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으며 예능 프로그램인 ‘아이 콘택트’에 나온 최홍림 씨가 떠올랐다. 형과 30년 넘게 의절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누나가 신청했다. 최 씨의 표정과 호흡, 형에게 토해내듯 말을 하는 모습과 내용을 들으며 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프로그램에 나타난 말을 통해서 공감과 이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같이 체험하고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한 어느 누구의 삶과 가족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길을 걸으며 최 씨의 삶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의 과거가 그를 평생 옭아매고 있었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심하게 조여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의 최 씨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반증이다. 과거의 사슬이 앞으로 나가려는 그를 잡아당겼고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슬을 끌고 다니면서도 이를 악물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사슬의 힘에 눌려 또는 수많은 시도와 좌절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사슬의 무게를 자신의 힘으로 버텨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아마 잠시라도 멈추었다면 사슬이 그를 뒤로 잡아당겼을 것이다.


그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과거를 잊으려 노력했으며, 과거의 사슬을 끊어내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힘을 키우면서도 사슬을 끊어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 사슬은 평생 끊어낼 수 없을 수도 있다. 평생 끌고 다닐 자신의 일부분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자신의 힘을 키우면 키울수록 사슬의 무게와 강도가 약해져서 어느 순간 깃털처럼 가볍게 느끼거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없애거나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이 강해져서 상대적으로 사슬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 사슬은 그의 삶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게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는 남아있다. 내면의 힘이 강해지고 사슬의 무게를 못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그 연민의 마음이 응어리를 천천히 자연스럽게 녹여낼 것이다. 그 이후 연민이 넘쳐흘러서 저절로 상대에게 흘러갈 날이 올 것이다. 자신이 연민을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넘쳐난 연민이 저절로 상대방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때 자신과 상대방이 ‘연민’이라는 물길을 통해서 연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민의 물길은 상대방의 슬픔, 외로움, 고통, 공포를 그에게 전달하며, 전달되는 순간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고통과 그의 고통이 하나가 되면 ‘용서’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저절로 사라진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상대방과 연민이라는 물길을 통해서 연결이 되면 그만큼 자신의 크기가 확장되는 것이다. 나라는 ‘소아(小我)에서 벗어나 ‘너와 나’가 연결된 ‘대아(大我)가 되는 것이다.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알게 되면서 ‘너’라는 대상이 점점 더 주변의 지인들과 심지어는 모르는 대상들에게도 확장될 수 있다. 이런 확장성은 일단 시작이 되면 점점 더 활발해져서 ‘나’라는 존재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삶의 고통은 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고마운 기회이며 삶의 큰 선물이다.


지금까지 홀로 공포스러운 과거와 싸워오면서도 잠시도 물러서지 않고 지금의 그를 만든 각고의 노력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보낸다. 또한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마도 과거가 그를 잠시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천천히 과거를 내려놓고 참다운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다운 휴식을 통해 저절로 자신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촬영 후 일주일 정도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그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지난 60여 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억울한 일이 과거와 싸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엄청나게 낭비한 것이다. 과거 의 사슬을 풀기 위해 사용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현재의 자신을 위한 창조적 활동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억울하고, 아쉽고, 안타깝다. 지금에서야 사슬은 푸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힘이 강해지면서 저절로 풀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과거와 싸우지 말고 현재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과거로 인해 고통 속에 빠질 때,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아는데 60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방법은 ‘지금-여기’에 사는 것 외에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고,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최홍림 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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