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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14. 2021

[걷고의 걷기 일기 0219]

목 디스크

날짜와 거리: 20210512 – 20210514  40km

코스: 서울 둘레길 외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3,93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 며칠 기분이 울적했다. 약 2주 전부터 우측 가슴 바깥쪽과 팔 위쪽이 저리고 가끔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근육통이 아닌가 해서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 아내는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예전에 목 디스크가 있다는 얘기를 기억했던 것이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목 뼈 마디의 간격이 일정한데 한 마디의 간격이 다른 것에 비해서 현저하게 좁다. 의사는 협착증이라고 하면서 물리치료를 받고, 처방한 약을 복용하며 지켜보자고 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해서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졌다. 

 

 지금 고혈압약과 전립선 비대증 약을 먹고 있다. 이 두 가지 약은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한다. 약을 평생 먹는다는 것은 평생 고칠 수 없다는 의미고, 그냥 약에 의존해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어제는 목 디스크로 인한 약 처방을 받았는데, 네 가지 약을 나흘간 먹어야 한다. 그 이후에도 당분간 계속 먹을 수도 있다. 약은 참 묘한 것이다. 한 가지 약을 먹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른  약을 함께 먹어야 한다. 제약회사의 장사 속셈인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약의 속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의사와 약 처방을 믿고 먹을 수밖에 없다. 

 

 약봉지가 쌓일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게다가 몸이 불편하고 움직일 때마다 전기 충격을 받는듯한 찌릿한 느낌이 들거나, 팔과 손 위이 무거운 물건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으면 기분도 나빠진다. 아침에 명상하기 위해 좌복에 앉으면 팔꿈치 아래 부분이 큰 돌에 눌린 것 같은 강한 통증이 느껴지고, 손바닥 아래 부분까지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처음에는 팔과 손의 통증을 명상의 도구로 삼아 시도도 해봤는데, 통증이 강해지면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누워서 명상을 하기도 했다. 약 먹고 물리치료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고, 몸 움직임도 훨씬 나아졌다. 의사는 당분간 물리치료와 약 처방을 통해 통증을 완화시키고 일단 치료를 마무리할 것 같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의사만 알고 있다. 어쩌면 내 몸이 먼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리치료받기 전 의사와 상담을 통해 몸의 상태를 얘기하고, 의사는 그 얘기를 듣고 판단할 것이다. 

 

몸 한 곳이 불편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하다. 몸과 마음을 분리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몸이 불편하니 괜히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약 먹고 조금 상태가 좋아지니 금방 태도가 돌변한다. 사소한 증상으로 인해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약봉지를 보며 짜증 내는 모습, 몸의 일부가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는 독배가 든 잔을 말없이 받았는데…. 한 점 떨림이나 낯빛의 변화,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잔을 입술에 갖다 대고 싫은 기색도 없이 가뿐한 마음으로 비웠다. 소크라테스는 동료들에게 마음의 평정을 찾도록 간청했다.” (알랭드 보통 철학의 위안)   


 죽음을 초연하고 당당하게 맞이하는 사람도 있는데, 약봉지와 몸의 사소한 불편함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자신이 우습다. 같은 사람인데 어찌 이렇게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까? 오늘 서울 둘레길을 걸었다. 우울이 심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는 분이 동참해서 같이 걸었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료와 처방을 의사와 약사에 맡긴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걷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우울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밖으로 나와 자신의 우울을 얘기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당당하고 보기 좋았다. 그분이 빨리 회복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다행스럽게 증상은 호전되고 있다. 며칠간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고 예전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너무 경박하게 상황에 반응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일이 발생해도 모두 사람들의 일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서너 시간 걷는 것이 아니고, 그냥 걷기 위해 걷는 것이 건강한 사람이다. 질병이나 불편함이 공부 깊이를 쟃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나는 척도 자체가 불가능한 공부 초입에도 들지 못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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