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넓은 평원을..)

넓은 평원을 가슴에 안고

by 걷고

시흥 갯골과 소래습지 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걸었던 길인데, 여전히 제게는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같은 길도 누구와 함께 걷느냐, 또 걸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떤가, 햇빛, 바람, 주변 경관 등에 따라 다른 길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길은 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듭니다.

넓은 평원에 펼쳐진 황금 빛 평원은 그간 농부의 노고를 보상하기에 충분하였고, 농부는 그렇게 잘 영그는 곡식을 보며 자연의 사랑에 감사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의 생산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코 자신의 노력만으로 될 수가 없고, 자연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연에 순응하게 되고,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되며,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자연의 사랑에 보답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갑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 자신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갑니다.

어제 우리에게 내려 주신 자연의 선물은 강렬한 햇빛, 맑은 하늘과 구름, 갈대와 벼와 모든 자연의 창조물을 춤추게 하는 바람과,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바람의 노랫소리였습니다. 그 물결과 소리에 맞춰 우리들도 함께 춤추며 모두가 모델이 되어 멋진 폼을 연출하기도 하고, 사진작가가 되기도 하여 서로에게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람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부드럽고 청량감을 주는 멋진 음악소리였고, 그 음악에 맞춰 우리는 절로 한바탕 춤마당을 연출하였습니다.

옆에는 서너 가족이 함께 모여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가족 놀이 문화가 있고 그 문화를 즐긴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제가 그런 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걷기 문화도 예전에는 없던 문화가 자리 잡아 가듯이 하나의 레져 문화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그 문화를 즐기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며 홀로 뿌듯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넓은 평원을 가슴에 담고 5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중간에 조금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모두 함께 완보를 하였고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처음 나오실 때 걷기를 힘들어 하셨던 어느 분께서는 어느새 갸름해진 몸매를 자랑하셨습니다. 그 분은 다른 분이 다리에 쥐가 나자 얼른 다가가서 자신이 전문가라며 쥐난 다리를 보살피는 모습을 보며 ‘배려의 신사’라는 다른 별칭을 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처음 참석하신 분들이 많아서 저 자신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함께 걸으며 그 어색함은 절로 사라졌고, 서로를 아껴주고 격려하고 존중하며 우리는 하나가 되어 소래포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걷기를 마친 후에 소래포구의 횟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술 한 잔 나누며 다정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로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중생의 삶인 거 같습니다. 즐거운 추억도 얘기하고, 당일 걷기에 대한 느낌도 나누고, 가끔은 각자 살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픔을 덜 수 있으며, 서로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수 있었습니다.

삶에는 희비가 공존하고, 애증이 있으며, 호불호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삶인 거 같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취하려 하고, 싫은 것을 내치려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으니 힘들어 하는 거 같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편안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걷는 이유도 그 중 하나일 거 같습니다. 걷다 보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어느 순간 절로 내려놓게 되며, 그 힘들었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실소를 짓고, 결국에는 환희심이 올라와 웃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걷기와 인생은 같은 거 같습니다.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길이 있기에 걷듯이 삶이 있기에 사는 거 같습니다. 드넓은 평원을 걸으며 제 마음도 저렇게 넓고 푸근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201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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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메세타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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