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걷기 일기0241]

'갈 길’ vs ‘가고 싶은 길'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10622 10km

코스: 불광천 – 한강 공원 – 월드컵 공원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4,23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늘 오후에 한과를 먹다가 예전에 씌웠던 이빨이 빠졌다. 세 걔의 이빨이 연결된 금 이빨이다. 가끔 친한 사람들은 웃을 때 금 이빨만 보인다고 얘기했던 그 이빨이다. 장모님께서 간식용으로 주신 한과를 먹다 그런 참변을 당한 것이다. 마침 장모님과 아내가 다니던 치과가 근처에 있어서 예약도 없이 쳐들어갔다. 친절한 치과의사라고 장모님께서 말씀하시던 의사를 만났다. 이빨에 충치가 생겼고, 신경치료도 해야 한다고 하며 들고 간 금 이빨은 사용할 수 없으니 치료 후 새롭게 맞춰 넣어야 한다. 참변도 부족해서 큰돈까지 쓰게 되었다.


치료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노화현상이 나타난다. 고혈압과 전립선 비대증이 그 예다. 두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중간에 약 먹기를 중단하며 위험하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의사들은 하고 있다. 2년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이상이 있으면 약 처방을 받는다. 눈에 작고 얇은 검은 줄 두 개가 보인다. 코로나 접종을 마친 후에 건강검진과 안과를 다녀올 생각이다. 몸을 지닌 우리는 질병과 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살기 위해 또 가족들 부양하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한다. 모든 사회생활을 접은 나로서는 약간의 용돈을 벌기 위해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상화폐는 요즘 바닥을 치고 있고, 주식은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고정비용은 발생하고 있으나 고정 수입은 없다. 외동딸 결혼시켰으니 아빠로서 기본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요즘 손주들 돌보느라 아내와 나는 제법 바쁘게 지내고 있다. 우리들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손주들이 성장하면 우리 부부는 더욱 노화되어 병마와 싸우거나 기력이 쇠해서 조용히 지내며 삶을 마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한 어른의 문상을 다녀왔다. 한국전쟁을 겪으셨던 분으로 포로로 잡히셨다가 풀려나신 분이다. 전쟁에서 총탄도 피해 갔고 포로 생활도 극복하신 분이다. 요양원에서 주무시다 낙상하셔서 골반 뼈 수술을 하셨고, 결국 어제 삶을 마감하셨다. 네 명의 자제분들을 훌륭하게 키우셨고, 사위와 며느리도 보셨다. 당신의 연금으로 병원비를 충당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한 가지 참 안타까운 점은 임종의 순간에 사모님께서 다른 요양원에 계셔서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로 왕래를 하시지 못하며 늘 서로에 대한 안부만 묻고 계셨다고 한다. 아직 사모님에게는 그분의 상황을 말씀드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어르신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 못한 사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단 한 가지도 쉬운 일이 없다. 물론 중간중간 삶의 오아시스 같은 시절도 있지만, 오아시스에만 머물수 없다. 사막 건너는 일을 평생 하여야 한다. 사막을 건너면 파라다이스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우리를 기다린다. 어쩌면 고통의 바다인 삶을 벗어난 것이 바로 파라다이스일 수도 있다. 태어남으로 인해 늙음, 질병,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태어남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기적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욕심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욕심과 갈등은 질투와 시기, 사랑과 미움을 만들어 내고 이런 감정들이 자신인 줄 알며 감정의 노예로 살아간다. 사람들의 삶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 틀 안에서 어떤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사막을 건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불안 속에서 힘들게 건너기도 한다.


요즘 송은일의 대하소설 ‘반야’를 읽고 있다. 대하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러 대(代)에 걸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 나오는 인물들의 언행, 삶의 방식, 마음가짐 등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간접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반야’는 신기(神氣) 높은 한 무녀의 얘기다. 무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니 사람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복장, 삶의 도구들, 환경은 변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본성은 변할 수 없다. 몸을 갖고 태어난 이상 부귀, 명예, 권력, 사랑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좀 더 넓고 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은 자신’을 죽여서 ‘큰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현인들이 있다.


아직 모두 읽지 못했지만, 소설 ‘반야’를 통해서 ‘갈 길’과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가고 싶은 길’도 있다. ‘갈 길’은 나의 길이고, ‘가고 싶은 길’은 욕심이 만든 길이다. 어느 길로 가든 결국 사막의 끝에 도착하게 된다. ‘갈 길’을 가면 편안하게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길’을 가면 힘들다. 욕심을 버리는 일이 자신의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하는 길이 ‘즐겁고 편안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이다. ‘가고 싶은 길’만 가고자 하면 삶이 고해(苦海)이고, 남을 도우며 ‘갈 길’을 가고자 하면 삶이 낙원이 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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