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심유이병)

심유이병

by 걷고

심유이병.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마음이 있어서 생기는 병과 마음이 없어서 생기는 병. 전자는 쓸데없는 생각이거나 욕심이 만든 생각이고, 후자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생기는 병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본심을 모른 채 자기라는 아상에 가려져 세상을 바로 볼 수 없기에 생기는 병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본심을 잃어버리고 다른 놈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생기는 병이다. 전자는 탐심이 만들어 낸 병이고, 후자는 치심이 만들어 낸 병이다.


맹자는 " 마음공부란 별 것이 아니다.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셨다. 부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자기의 주인을 찾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과정과 방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가 된 상황이다. 주인은 잃어버리고 더 이상 찾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한 방편에만 마음을 쏟는다.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부와 권력을 쥐었다고 해도 주인 행세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들의 노예가 되거나 꼭두각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노예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지 못하게 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모질어지는 것 같다. 이것이 아수라의 세계일 것이다. 아마 최근에 대두되는 ‘갑질’이 바로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노예가 주인 행세를 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요즘은 주변 상황도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가면서 마음이 편안해 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속에는 분노가 많이 남아있다. 그간 살아오면서 당했다고 생각하는 억울함이 많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 판단에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분노가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나이 들어가면서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하거나 대처할 용기가 부족해 진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마 그 분노는 이미 내 마음속에 내재된 것일 수도 있다. 마음 속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달래 주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해 왔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같은 방식으로 대해주길 원하는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주인은 사라지고 객인 삼독 즉, 탐심, 진심, 치심이 주인 행세를 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치심이 탐심을 만들어 내고, 탐심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에 진심이 드러나게 된다.

부모는 자식에게 뭔가를 해 주려고 한다. 자식은 그 방식이 자신과 다르다고 거부하고 저항한다. 부모는 무안해하고 미안해한다. 자식은 부모의 그런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혔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었다는 승리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조차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해 왔기에. 부모는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받고 배운 대로 자식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데, 자식들은 전혀 받으려하지 않아 소통이 불통이 된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던 적이 많으셨지만, 표현을 하시지 못하고 속으로 울분을 삭히고 참고 견뎌내셨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업보이다.

유심이 병이다. 마음속에 우리의 방식으로 뭔가 자식을 위해서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병을 만든 것이다. 사랑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사랑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이 받지 않아 서운해 하고, 상대방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기에 거부하고 저항한다. 거기서 불화의 불씨가 불붙어 화마로 변한다. 하지만 부모-자식 관계이기에 상호 교류 없이 지낼 수는 없다.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며 우리가 우리의 방식대로 해 주고 싶어 하는 것을 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 부모님께서 참으셨듯이. 자식들이 설사 상처를 주는 한이 있어도 부모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어불성설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인내하고, 기다리고,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칼 로저스의 책을 읽고 있는데, 서문에 이런 글이 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우리 모두가 참답게 자신다울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이다. 부처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다울 수 있을 때, 상대방을 올바르게 보게 되고 존중하게 되며 연민의 감정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나의 주인을 찾는 일이 급선무이다. 주인을 찾게 되면 심유이병은 절로 사라진다. 없애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나타나면서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방 안의 어둠이 불이 들어오면서 저절로 사라지듯이. 병 자체가 마음공부의 실체와 스승이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식들은 나의 스승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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