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빛과 그림자)

빛과 그림자

by 걷고

빛과 그림자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반드시 생기게 됩니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빛과 그림자는 한 몸입니다. 절대로 둘이 따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명암이 있습니다. 행복한 날도 있고, 운이 지독히 나쁜 날도 있습니다. 행복은 불행이 있기에 느낄 수 있습니다. 불행이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행복과 불행 역시 한 몸입니다. 그런 삶 속의 명암이 우리 인생을 채워갑니다.

어제 걸었던 위례둘레길에서 빛과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길을 조금 걷다가 숲 속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입구까지 가는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를 두 번 반복하며 어렵사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표시한 분이 안 계셨습니다. 입구는 바로 가파를 계단 길로 이어졌습니다. 높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시름은 절로 사라집니다. 지금까지 어렵게 이동해 온 것에 대한 자연의 보상이었습니다. 짙은 숲 속에서는 햇빛을 나뭇잎 사이로만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숲이 만들어 낸 그늘과 시원한 바람이 계절을 잊게 만들어 줍니다. 이 길을 안내하시는 소삼님께서 강한 햇빛을 피하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이 길을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위한 마음 따뜻한 배려입니다.

길은 계속해서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길로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습니다. 이런 더운 날 더위와 강한 햇빛을 피해 걷기에는 아주 좋은 코스였고, 운동도 제법 될 수 있는 명품 길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평상이 있거나 쉬기 편안한 곳을 발견하면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쉼’이란 ‘걷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걷기’ 나 ‘운동’ 없이 ‘쉼’만 있다면 그 ‘쉼’은 바로 ‘죽음’ 일 것입니다. 이 역시 ‘빛과 그림자’와 같은 맥락입니다. 노둥 후의 휴식이 아름답고, 고생 후의 행복이 아름답고, 강도 있는 걷기와 운동 후의 휴식이 아름답습니다. 길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습니다. 이 역시 ‘빛과 그림자’와 같은 맥락입니다.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은 존재할 수도 없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먼 북소리님은 휴식을 취하는 쉼터마다 스틱으로 땅을 파는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길이 은근히 힘들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길 안내하시는 분을 따뜻한 곳에 묻어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번 환생하시는 기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먼 북소리님은 마지막 휴식 장소에서는 낙엽을 모아 봉분을 만들어 묘의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신출귀몰한 소삼님은 어느새 들어갔다가 다시 환생을 하여 우리들에게 마지막 길을 안내하며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매 순간 ‘삶과 죽음’을 맞이합니다. 한 호흡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걸으며 ‘빛과 그림자’를 보았고, ‘쉼과 걷기’를 보았으며, 거친 호흡을 통한 ‘삶과 죽음’을 보았습니다.

걷기를 마친 후에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걸으며 못 나눈 얘기를 하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함께 고생을 한 동지들이 풀어내는 회포의 자리. 고생과 뒤풀이는 한 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차, 삼차까지 오랜만에 뒤풀이 장소를 쫓아다녔습니다. 전철이 끊겨 결국 합정역에서 비싼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잔소리 한마디 들었지만, 그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은 이유는 저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서입니다. ‘잔소리’는 ‘사랑’이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는 순간입니다. 함께 길을 걸은 길동무님, 길을 안내해 주신 소삼님, 우리가 걸었던 위례둘레길과 남한산성에 감사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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