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64]

길이 주는 선물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20422 - 20220423 16km

코스: 양평 물소리길 6코스 용문역에서 용문 관광단지

평균 속도: 3,5km/h

누적거리: 6.61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2022년 3월 13일에 양평 물소리길을 걷기 시작했고, 4월 23일 완주했다. 총 6개의 코스로 나누어진 55.8km의 거리를 네 번에 나눠 걸었다. 양수역에서 출발해서 용문 관광단지에서 끝나는 이 길은 한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어서 물소리 길로 명명된 것 같다. 역에서 출발해서 역에서 마칠 수 있도록 길을 잘 설계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를 넘는 길도 있고, 한강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시원한 길도 있고, 새소리와 바람소리, 만개한 벚꽃과 이름 모를 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길도 있다. 주로 평지로 조성된 이 길은 걷기에 아주 편안한 길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강을 바라보며 무심히 걸으면 지루함을 무심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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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할 만큼의 기초적인 재능을 갖고 있지도 않은 길치가 안내자로 나서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워낙 길치인 나로서는 이번 길은 약간의 부담을 안고 시작한 길이다. 사전 답사를 하지 못했기에 전적으로 길 표식에 의지해서 걸었고, 중간에 표식이 없어서 헤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길동무들이 나서서 표식을 찾아주기도 했고, 예전에 걸었던 기억을 되살려 방향을 잡아주기도 했다. 이번 길은 길동무들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서울 둘레길 안내를 할 때는 사전에 혼자 전 구간을 걸었고, 동호회에서 길 안내 예정일 1, 2 주 전에 다시 한번 코스를 걸으며 길치로서의 부담을 덜 어내며 길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노력했다. 안내자로 길을 헤매거나 회원들에게 불필요한 수고나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이번 길은 오고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사전 답사를 하지 못해 늘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그 불편한 구석을 길동무들이 편안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계획했던 길을 마치니 가슴 한 구석이 시원하다. 성취감보다는 그냥 부담을 덜어 낸 또는 하고자 하는 일을 마친 편안함과 시원함이다. 동시에 가고 싶은 길을 걸었다는 뿌듯함도 있다. 이 길을 ‘양평 물소리 길’이라고 명명했기에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길의 시작점은 양수역이고 마치는 지점은 용문 관광단지이다. 편의상 누군가가 그렇게 길을 조성했고, 그렇게 명명했다. 하지만, 용문 관광단지에서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 길의 끝에 피니스테레라는 곳이 있다.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길이 끊어진 곳이다. ‘피니스테레’는 피니스(끝)와 테레(땅)가 합성된 의미라고 한다. 길이 끊기고 망망한 바다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양평 물소리길은 끝나는 지점이 피니스테레처럼 길이 끝난 곳이 아니고 그냥 편의상 만들어 놓은 길의 도착 지점일 뿐이다.


땅 끝이라고 하지만, 피니스테레 역시 땅 끝은 아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다른 땅이 끝없이 펼쳐진다. 땅 끝은 땅의 시작점이 된다. 양평 물소리길 역시 용문 관광단지에서 모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길이 바로 다른 길의 시작점이 된다. 끝은 시작의 다른 단어에 불과하다. 편의상 하나의 끝과 시작이라고 부를 뿐이지, 실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길이다. 길은 땅 위의 길도 있지만, 삶 속의 길도 있다. 길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상황들이 우리의 스승이 된다. 삶 속의 길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킨다. 극한 상황은 우리를 용광로 속에 넣어서 잡철을 강도 높은 순수한 강철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역경은 우리를 담금질하며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변화는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변화한다. 자신의 껍질을 자의든 혹은 타의에 의해서든 벗어던지고 새로운 자신으로 변모한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를 한 발 앞으로 나가게 만들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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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면 길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준다. ‘산티아고 길’은 ‘이 또한 지나가리’를 체득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이 진리는 삶의 어떤 순간, 어떤 사람들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함으로써 일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서울 둘레길’은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는 귀한 선물을 주었다. 자기 효능감이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이는 자신 앞에 주어진 어떤 과제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나아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한계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양평 물소리 길‘은 ’ 길동무의 중요성과 감사함‘이라는 큰 선물을 보내주었다. 홀로 걸었다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었고, 중간에 많이 헤매며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길동무들 덕분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경험 속에 나온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혼자 살아갈 수도 없고 많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 홀로 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 걷기‘이다. 홀로 걸으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자신의 고통을 홀로 온전히 떠안으며 견디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함께 걸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또는 함께 걷는 사람들을 통해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잡철로 가득한 자신을 순도 높은 강철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은 거울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기도 한다. 지칠 때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힘들 때 즐거운 대화로 이끌어 주기도 하고, 두렵고 외로울 때 옆에서 함께 걸으며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점점 더 길동무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번 길을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들께, 그리고 그간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양평 물소리 길은 나에게 모든 길동무들에게 마음을 열고 가깝게 다가가고 친절하게 대하는 좋은 길동무가 되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다. 이 역시 귀한 선물이다. 길동무들에게 또 길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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