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63]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20420 - 20220421 20km

코스: 월드컵 공원 외

평균 속도: 4,3km/h

누적거리: 6.60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삶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고통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황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고통이라고 하는 것일까? 고통의 정의가 먼저 내려져야 한다. 고통의 사전적 의미는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라고 한다.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넘어지면 피가 나고 통증을 느낀다. 몸의 고통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몸으로 느낄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의 고통은 어디에 존재할까?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아리다고 하지만 꺼내어 볼 수도 없고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다만 고통스럽다는 것만 느낄 뿐이다. 몸의 고통은 환부가 완치되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마음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괴롭힌다. 몸의 고통은 수술을 통해서 회복될 수 있고, 완치되면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에 반해 마음의 고통은 수술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보이지 않는 곳을 치료해야 하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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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에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두 가지 처방전을 내어놓았다. ‘비동일시’와 ‘현존’이다. ‘비동일시’란 자신의 느낌, 감정, 생각, 감각 등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그 감정 속에 깊게 빠져들면서 과거의 상황까지 끌어들여 확대 해석하며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주인은 사라지고 노예가 주인 노릇을 하는 격이다.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다른 생각들을 끌고 온다. 그 생각의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되고 심지어는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동일시’를 통해 감정이나 생각을 자신과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발생하는 ‘동일시’되는 상황을 자각하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면 감정이나 생각은 힘을 잃고 저절로 사라져 버린다. 생각이나 감정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동일시’라는 양분이 필요한데, ‘비동일시’는 ‘동일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백신이다.


“자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생각하는 자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깨어납니다. 당신의 생각, 감정, 감각은 당신이 아님을 깨닫고 당신의 진정한 자아에 눈 뜨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현존’은 지금-여기에 머무르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후회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 머무는 것이다. 과거는 무의식적으로 표면 위로 떠올라 끊임없이 우리를 과거로 끌고 가며 과거의 노예로 만든다. 미래는 환상이나 망상에 불과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라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과거와 미래는 늘 우리의 현재를 갉아먹으며 현재의 주인을 과거나 미래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현존’의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몸에 대한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빠져있을 때 바로 몸의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자신이 서 있는 발과 땅의 감각을 느끼거나, 몸의 감각을 느끼거나, 들숨 날숨을 느끼며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과거가 당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구원과 성공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환상일 뿐입니다. 현재의 순간을 거부하며 그에 저항하는 낡은 패턴을 깨뜨려야 합니다. (........) 몸을 의식하면 현재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닻을 내리게 됩니다. 당신의 몸 안에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잠시 몸 안의 느낌에 집중해 보세요.”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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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의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마음의 고통이다. 물론 몸의 고통으로 인해 통증을 느끼며 마음이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은 단지 몸이 아픈 것이지 마음이 아프거나 자신 전체가 아픈 것은 아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 파도가 치는 것을 보고 바다 전체가 파도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심해는 그저 고요하고 담담히 흐를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삶의 고통은 삶이 처한 상황으로 인한 고통이지 삶 자체가 고통은 아닌 것이다. 다만 우리가 고통스럽다고 느낄 뿐이다. 삶의 상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상의 진리를 삶 속에서 체득할 수 있다. 무상은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삶’은 ‘삶의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상황은 심리적 상황인 과거와 미래입니다. 삶의 상황은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삶의 상황은 마음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실제입니다. 당신의 삶을 지금 이 순간으로 좁히세요.” (본문 중에서)


마음의 고통은 주어진 상황을 과거의 무의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 불필요한 불안감으로 인해 왜곡된 해석을 함으로써 발생한다. 현재만이 과거와 미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데 과거와 미래로 인해 현재가 서 있을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거의 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망상이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 이 순간에 깨어있음을 통해서만 과거의 족쇄로부터, 미래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오직 이 순간에 머물고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며 삶의 관점을 좁힐 필요가 있다.


“매 순간 그 순간의 현실에 자신을 맡기는 겁니다. 지금의 상황 그대로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신은 상황이 고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의 저항입니다.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 그것에 자신을 맡기세요. 그냥 지켜보며 어떤 행동도 하지 마세요. 주의를 집중하고 현재에 머무세요.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선택하는 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삶의 구심점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 안개는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인생의 상황입니다. 손전등은 의식적인 현존이며, 밝고 환한 공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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