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69]

고엔카의 위파사나 명상,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윌리엄 하트 지음)

by 걷고

미얀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상 센터 세 곳이 있다. 고엔카 명상 센터, 파욱 명상 센터, 마하시 명상 센터이다. 모두 명상 센터를 설립하신 수행자의 이름을 붙인 센터이다. 고엔카 명상 센터 한국 분원으로 담마 코리아가 있다. 그곳에서 10일간의 명상 코스를 마친 경험이 있고, 파욱 스님께서 한국 방문 시 2박 3일간 참가해서 수행했던 경험도 있다. 수행에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담마 코리아에서 수행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수행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마음다짐도 하게 된다. 이 책은 마음속에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있던 수행의 불씨를 되살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수행의 필요성과 고통의 소멸에 대한 방법을 정리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수행 체계가 매우 논리적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의 시작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자기’에 대한 무지로 인해 ‘나’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나’라는 존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흘러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과 생각, 감각, 느낌 등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나’라고 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없다는 ‘무아’는 불교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세상의 진리이다. 다만 그 사실을 부처님께서 깨닫고 가르침을 펴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불교의 진리는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진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만법과 온 우주의 진리인 법, 담마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은 맹목적인 정신적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습관을 강화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언행을 통제하고 지시한다. 과거가 현재를 통제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고통의 원인이라면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 역시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나’라는 환상의 소멸과 정신적 반응의 고리를 끊어내면 되는 것이다.


고통의 소멸을 위한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계율(戒律),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계발이다. 계율은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나’가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동안에 ‘거짓 나’를 위해 만들어진 나쁜 습관들은 계속해서 그 습관을 강화시키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자꾸 찾게 되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점점 더 그 늪에 빠지게 되고, 거짓말을 하거나 이간질하는 사람은 다른 거짓말이나 이간질을 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결국 자신이 자신을 고통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라는 5계를 일반 신도들에게 지침으로 알려준다. 5계의 참뜻은 소극적으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불살생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고 남을 돕는 것이 불투도이다. 배우자 외의 사람들과 불건전한 성행위를 하지 말고 모든 이성을 가족 대하듯 아끼라는 것이 바로 불사음이다. 거짓말이나 이간질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과 소통하라는 것이 불망어이다. 취중에 흐리멍덩하게 살지 말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불음주이다. 습관의 노예로 살아가는 쇠사슬을 끊어내기 계율을 지키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며 이를 통해 습관의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5계는 과거의 노예로 살지 않고, 자신의 주인으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지침이다.


고요함을 계발하는 방편으로 부처님께서 ‘호흡 알아차리기’를 말씀하셨다. 호흡 알아차리기는 지금-여기에 머무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꾸준히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느낌, 감각 등은 모두 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미 지나간 것들이다. 과거의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습관의 관성대로 살아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자,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호흡을 알아차리며 지금-여기에 머물게 되면서 더 이상 과거가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고요함 속에 지금-여기에 머무는 습관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더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과거의 습관이나 무의식적인 자동적 사고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여기의 자신이 주인이 되는 길이다. 삶의 방식과 태도를 현명하게 자신의 주인으로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호흡 알아차리기’를 통한 고요함의 개발을 바탕으로 지혜의 통찰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위파사나 명상을 하면서 반응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명상하는 동안 상카라를 일으키지 않는다. 과거의 반응들이 하나둘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조건화가 특정한 유형의 깔리빠를 일으킴으로써 몸에 나타난다. 몸에서 감각으로 경험한다. 반응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상카라는 일어나지 않고, 과거의 축적물에서 올라온 상카라는 사라진다. 위파사나 명상은 과거의 조건화를 제거하는 일종의 마음의 단식이다. 끈기 있게 명상하면 짧은 평정의 순간들은 길어지고 반응의 순간들은 짧아질 것이다. 반응하는 정신적 습관은 부서지고 오래된 조건화된 반응들은 제거될 것이다. 항상 변화하는 몸의 감각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무상한 성질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위파사나 명상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본문 중에서)


상카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혜의 계발이 필요하다. 상카라라는 것은 형성되는 행위와 이미 형성된 것 모두를 의미한다. 외부 자극과 접촉되는 순간에 의식이 발생한다. 의식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단순히 접촉의 접수창고 역할만 하는 것이다. 접수된 외부 자극은 분류되고 평가하는 지각 작용을 일으킨다. 눈이 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의식이고, 꽃이라고 알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바로 지각이다. 지각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꽃을 보며 자연스럽게 올라 오는 감각으로 감각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다. 감각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 반응이 바로 상카라이다. 가치를 부여하고 좋다, 싫다, 아름답다, 추하다는 반응을 하게 된다. 꽃으로 프러포즈를 받아 본 사람은 꽃은 사랑을 의미하며 꽃에 집착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반면 꽃으로 맞아본 꽃집 아르바이트생은 꽃을 분노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혐오하게 된다. 같은 꽃을 경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며 그에 따른 반응을 한다. 이런 반응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되고, 동시에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상카라는 결과이자 다른 상카라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상카라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이 바로 몸의 감각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다. 반응하지 않게 되면 상카라는 양분이 제공되지 않기에 저절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감각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하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평정심은 사무량심의 기반이 된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임을 하는 것, 어떤 것도 자신을 압도할 수 없다는 것,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미소 지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완벽한 평정심이며 진정한 해탈이다. 평정심과 함께 순수한 마음의 다른 자질들이 생겨난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선의와 사랑, 다른 사람의 실패나 고통에 대한 연민,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운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바로 그 자질이다. 이 네 가지 자질은 위파사나 수행의 필연적 결과이다.” (본문 중에서)


요즘 아침마다 아나빠나 위파사나를 수행하고 있다. 아나빠나는 호흡 알아차리기이고 위파사나는 몸의 감각에 반응하지 않고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담마 코리아에서 수행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수행 단계와 왜 그 수행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이제 겨우 수행의 문턱을 막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하면서 금년 안에 다시 한번 담마 코리아에 들어가서 집중수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쩌면 매년 한 번씩 집중 수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수행의 힘을 키울 필요도 있다. 걷기, 글쓰기, 수행과 불교 상담, 독서를 통해 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앞으로의 이 다섯 가지의 기둥이 삶의 기반이 되며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 좋은 책과 인연이 되어 마음 깊이 새기며 읽었고, 중요한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마음 한 구석에 편안함과 후련함이 떠오른다. 수행처의 문고리를 붙잡았다는 안도감 덕분에 생긴 편안함이고, 그간 수행한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이제야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다는 후련함이다. 지금부터는 평정심을 계발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진 또 정진 밖에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정진하라’였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고귀한 인연에 감격과 환희가 차오른다. 감사합니다.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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