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파트 입구 경사로에서 넘어져 허리가 아프다. 슬리퍼 바닥이 닳아서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어떻게 넘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넘어진 상태에서 누워서 잠시 멍하니 있었다. 정신 차리고 몸을 천천히 움직여보니 움직일만했고, 옆에 있는 핸드레일을 잡고 서서히 일어났다. 꼬리뼈와 허리에 통증이 있고, 다행스럽게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다.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힘을 써서 그런지 목 뒤 근육에 긴장감이 느껴진다. 놀란 마음 진정시키고 몸을 조금씩 움직여봤다.
이번 주 일정표를 보니 만날 사람과 할 일이 거의 매일 있다.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특히 걷기 카페에 올린 걷기 공지를 취소하며 어쩔 수 없이 상황 설명을 해야만 했다. 친구 모임도 취소하면서 친구들이 알게 되었고, 독서 모임도 참가하지 못한다고 연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상황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집안 식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아내만 알고 있고, 굳이 다른 가족들에게 알릴 필요도 없는 일이다. 친구들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한다.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나이 들면 조금이라도 이상 발견 시 병원에 가라고 한다.
모든 약속이 취소되니 홀가분하다. 백수인 사람이 매일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 오히려 백수가 더 바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요즘 일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매일 할 일이 있다. 월요일에는 상담 두 사례를 진행한다. 화요일에는 수필 쓰기 수업을 듣는다. 오전에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모임이고 허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 수요일은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인데, 친구들이 가끔 불러낸다. 목요일은 딸네 가서 손주들과 놀고 온다. 금요일에는 경기 둘레길 길 안내를 한다. 주말은 걷기 모임에 참석하거나 집에서 쉬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한다. 평일 중 수요일만이 유일한 휴일인데, 이날 친구들 만나지 않으면 친구들 만날 일도 없어져서 친구 모임은 수요일로 정하는 편이다. 좀 더 단순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 하면서도 매일매일 할 일이 있고, 없으면 만들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대부분 일정을 오후로 잡으려고 한다. 오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오전에는 명상과 글쓰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나니 갑자기 한가해졌다. 허리가 아프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다른 작업하기도 불편하다. 오늘은 아침에 조금 컨디션이 좋아져서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소파나 바닥에 누워만 있으니 오히려 허리가 더 아프다. 거실을 천천히 걸으려 하는데 아내가 가능하면 움직이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한다. 오래 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걷거나 앉지도 못하게 하면 어떤 자세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미끄러져서 허리가 아픈 것도 있지만, 오래 누워있어서 허리가 아프기도 한 것 같다.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검사해보니 다행스럽게 뼈에 이상은 없다고 하며 진통소염제를 처방해 주었다. 물리치료도 40분 정도 받고 왔다. 뼈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커피 판 한잔과 과자를 마시고 먹으며 글을 마저 쓴다.
하루 누워있었는데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가로움은 몸이 편할 때 생기는 여유로움이다. 몸이 불편해서 눕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몸의 근육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멘털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지켜주는 것이 루틴이다.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일정과 계획에 따라 실행하면서 삶의 보람과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으며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지켜나가며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은 의지가 대단한 사람들이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몸에만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정신에도 이상을 초래할 경우가 많다. 몸과 마음, 정신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경우도 있다. 게다가 아프다는 것을 본인이 스스로 알게 되면서 관리를 잘 못하게 되면 몸의 고통이 자신의 삶을 함몰시킬 수도 있다. 몸이 아픈 것이지 자신 전체가 아픈 것은 아니다. 허리가 아플 뿐이지, 나 자신 전체가 아픈 것은 아니다. 몸의 통증과 자신을 분리하는 시도를 통해서 통증은 통증대로 두고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씩 노력하면 아픈 와중에도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는 이어갈 수 있다.
이번 사고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노화현상에 대한 자각이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주변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나 대처 방식이 많이 느려진 것이다. 이메일이나 문자, 서류 등을 읽으면서도 놓치는 부분이 많다. 지하철 역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면서도 몇 번 출구인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약속 날짜도 자꾸 확인하게 되고, 친구들과 카톡으로 나눈 대화 내용도 가끔은 다시 보면서 기억해 내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심지어 최근에 아파트 현관 출입 장치를 바꾸었는데, 그 앞에서 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세 번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은 많이 줄어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언행으로 인한 불편함도 많이 줄어들었다. 웬만하면 ‘그러려니’하며 지내는 편이다. 가끔 수다가 늘었다는 생각을 하며 빨리 알아차리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편한 면과 불편한 면이 공존하게 된다. 삶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편한 것과 불편한 것이 상존하는 것이 삶이다.
사고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이 전화나 카톡, 동호회 카페 글로 안부 인사를 전해줘서 고맙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간 만들어 놓은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락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안부와 연락을 받으니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정한 관심과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것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다. 안부 인사를 전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두 일상에서 건강관리에 신경 쓰며 몸과 마음이 편안한 나날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