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저녁 침묵 걷기 09]

혼돈과 정돈

by 걷고

날씨가 여전히 무덥긴 하지만 그래도 한풀 꺾인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에 창문을 열면 불과 며칠 전까지 불어오던 무덥고 습한 바람이 아니고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세월의 흐름은 날씨도 피해 가지 못한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날씨는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 세월의 변화는 무상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무상은 희망을 의미한다. 변한다는 것은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과 다르다는 것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뜻한다. 아무리 더워도, 또는 추워도 언젠가는 더위와 추위는 물러간다. 삶 속의 고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저녁 걷기는 60대 초반의 부부와 걸었다. 서로 살아온 얘기를 하며 즐겁게 걸었다. 살아온 오랜 세월이 있는 만큼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나이 든 사람들끼리 통하는 면이 있어서 걸으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60년 이상 살아오면서 삶의 고통이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단 한 번도 고난을 겪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뛰어난 성자이거나 아니면 생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삶의 매 순간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반복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때 즐거움을 느끼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모든 것이 정돈된 느낌이 들고, 괴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모든 것이 혼돈 속에 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혼돈과 정돈의 반복이 우리네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을 정돈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좌절과 성취감을 맛보며 조금씩 자신의 모난 모습을 둥글게 만들어간다. 정돈된 모습이 오래되면 다시 흐트러지며 혼돈이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정돈을 위한 노력을 한다. 혼돈에서 정돈으로 가는 과정에 고통이 찾아온다. 고통은 선물이라는 말씀은 맞는 말이다. 고통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이루기 때문이다. 만약 삶의 혼돈이 없다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나 발전, 변화와 성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중략)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일부)


단테의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편 제3곡 지옥문에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옥은 희망이 사라진 곳이고 암흑 속에 갇혀서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볼 수 없는 곳이다. 지옥은 어떤 특정한 곳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어려움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할 때, 우리는 좌절하고 앞이 깜깜 해지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발 한발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설사 그것이 희망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더라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연옥이라는 세상이 있다. 불로 자신이 지은 죄를 정화하는 곳이다. 연옥에서는 하늘을 볼 수 있고, 별도 볼 수 있다. 별은 희망이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고통은 지옥이지만, 동시에 고통을 겪어내는 과정이 연옥이고, 연옥을 통해서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연옥은 지은 죄에 대한 업보를 받으며 업장을 소멸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대부분 우리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다. 그 욕심 중에는 우월해지려는 욕심도 있다. 우월감은 열등감과 같은 의미다. 두 가지 모두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적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못나고 수동적인 태도이다. 함께 걸으며 예전의 삶이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어도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얘기도 나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모두 비슷하게 못 살았고, 비교하는 대신 잘 살려고 함께 노력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서로를 비교하는 잘못된 관행이 일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상대적 열등감이 많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 삶 속에 찾아오는 불행의 시간, 역경의 시간, 좌절의 시간은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 기회를 잘 이용하게 되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 만난 부부 역시 힘든 시간을 통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의 행복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아끼고 건강을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과거의 힘든 시간들이 지금의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대부분 그 과정은 비슷하다. 삶의 어느 한순간 찾아온 고통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갈 길을 다시 정립하게 된다. 그 길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들도 포함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발생하면서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의 방편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혼돈과 정돈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게 된다. 그 반복은 수평적 반복이 아니고 수직적인 나선형 반복으로 점점 더 그 깊이가 깊어진다.


매봉산 무장애길을 걸었다. 이 길을 만드는 동안 매봉산은 혼란스러웠다. 쇠를 자르는 소리와 스파크, 냄새가 진동했다. 작업 물품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렸다. 한동안 코로나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동안 그 길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그 길을 걸을 때 언제 끝났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깔끔하게 무장애 길이 정돈되어 있었다. 불광천에서 올라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차도 옆에 작은 숲길이 있었다. 그 길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화투를 하며 싸우거나 술을 마시고 있어서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다녔다. 언젠가부터 숲길 일부가 사라지더니 일부 지역은 통행이 금지되었다. 한동안 다른 길로 다니다 오랜만에 가보니 깨끗한 꽃길로 단장되었다. 혼돈이 정돈된 것이다. 혼돈이 정돈이 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혹시 지금 삶이 고통스럽거나 혼란스럽다면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삶의 재정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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