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들을 소개합니다

by 걷고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걷기 좋은 가을이 찾아왔다. 합정역에서 이천과 안성의 경계인 광천마을로 가는 고속도로가 행락객들을 싣고 달리는 차로 가득하다. 2시간 정도 예상한 거리였는데 30분 정도 더 걸려 오늘 출발지점인 광천마을에 도착했다. 원래는 37코스 남은 부분을 걷고 38코스를 걸을 계획이었지만, 전체 28km를 걷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38코스 끝나는 지점에서 거꾸로 걷기로 결정했다. 38코스를 완주한 후 참석자들의 체력 상황을 봐서 37코스 남은 부분을 걸을지 판단할 생각이었다. 21km라는 물리적 거리는 결코 쉽게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결국 38 코스만 걸었다. 37코스의 일부분을 걷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무리해서 걷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평지로 이루어진 38코스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길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평지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로움만 찾는다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누군가가 빗자루로 구름을 쓸어낸 것 같은 정갈한 구름의 무늬와 푸르고 높은 하늘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논과 벼를 베어낸 땅을 다시 일궈놓은 밭이 가을의 풍경을 보여준다, 차마 더 기다릴 수 없어 길가에 떨어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실한 밤도 보이고 누군가 주어 가고 빈껍데기만 남아있는 것도 있지만, 그 속에서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한 자루나 되는 양의 밤을 찾아낸 길동무도 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한 해 농사가 잘 되어 보기 좋다. 바람도 시원하고 멀리 보이는 산은 안개에 가려져 선계를 보여준다.

오늘 걸은 길의 백미를 꼽는다면 단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청미천 꽃길을 얘기할 수 있다. 왼쪽에는 청미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중간의 뚝 양편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우리를 환영한다. 그야말로 꽃길이다. 그 거리가 아마 족히 몇 킬로는 될 것 같다. 마을에서 공동 사업으로 추진한 듯 아름다운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 꽃은 골드 코스모스로 외래종이고, 왼쪽에는 토종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토종 코스모스의 단아함과 수줍음에 비해 골드 코스모스는 자신의 화려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골드 코스모스는 토종 코스모스 속에서도 띄엄띄엄 발견되지만, 골드 코스모스 지역 내에는 토종 코스모스를 발견할 수 없다. 길동무의 말에 의하면 뿌린 씨가 바람에 날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데, 외래종 지역에서는 토종이 살 수 없지만, 토종 지역에서는 외래종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토종은 외래종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여유와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다문화 가정의 가족들을 품고 함께 행복하게 지내길 마음으로 기원한다.

몇몇 회원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경기 둘레길 진행이 잘 되어가고 있다. 그중 몇몇 분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다. 비단님은 걷기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멋진 의지의 여인이다. 걷기가 일상이 되어 걷기 모임 외에도 혼자 많이 걷는다. 걷기가 좋아 경기 둘레길에 참석하면서 차량 예약과 정산, 식당과 화장실 검색, 코스의 특성을 미리 파악하여 걷기 진행 과정에 대해 조언을 주는 믿음직한 길동무다. 비단님 덕분에 우리는 매주 편안하게 차를 타고 이동해서 걷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꽃가루님은 배지 부자다. 많은 길을 걸으며 배지를 모았는데, 그 배지가 만약 비트코인이라면 세계 1위의 부자가 될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길을 좋아하는 꽃가루님은 길 안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눈 뜬 장님인 나를 대신해서 눈 밝은 길 안내자로 헷갈리는 길을 잘 찾아주며 우리를 편안하게 이끌어 주고 있다. 히란야님은 걷기의 달인이다. 해외 트레킹도 다녀왔고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완주한 베테랑이자 등산 학교 강사로 산행과 걷기 전문가다. 경기 둘레길 마치고 바로 그날 밤에 백두대간으로 떠나는 강한 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히란야님은 길동무들의 체력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 주며 선두에서 걷고 있다. 내년 봄에는 사위와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고 한다. 멋진 인생이다.

다니엘 1님은 분위기 메이커다. 분위기를 늘 밝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고 있다. 특히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분위기에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동분서주 홍길동처럼 뛰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준비해 온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 같은 사람이다. 특히 그의 뛰어난 친화력은 뒤풀이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스위치님은 경기 둘레길 처음 나온 날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사람이다. 신고식 후 자신의 체력 상태에 실망과 함께 오기가 발동해서 꾸준히 운동하고 걸으며 체력을 끌어올린 의지의 여인이다. 술 한 잔도 못하는 그녀는 지금은 맥주 서너 잔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에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인 스위치님은 뒤풀이 장소 섭외와 정산을 도와주며 즐겁게 걷고 있다. 도니님은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모두 걷고 지금 서해랑길을 걷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참석해서 함께 걷고 있다. 마음이 넓고 여유로운 미소와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멋진 친구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오랜 길동무이기도 하다. 물론 이 사람들 외에도 꾸준히 참석하셔서 함께 즐겁게 걷는 길동무들도 많다. 그간 참석했던 모든 길동무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누가 역할을 분담해서 나눠준 것도 아닌데 저절로 각자 할 일을 찾아 도움 주며 즐겁게 걷고 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바로 리더인 나 자신이다. 리더의 역할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리더가 해야 할 일들을 골고루 나눠서 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꽃가루님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모든 참석자들이 리더이기에 굳이 한 사람이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겨 주었다. 내가 걷고 싶어서 시작한 길인데 걷고 싶어서 찾아온 길동무들 덕분에 무임승차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즐기며 걷고 있다.


지금까지 전체 60코스 중 약 25% 정도 걸은 것 같다. 앞으로도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이 길을 함께 즐기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길은 걷는 자만이 주인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길이 있어도 걷지 않는 한 그 길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길이고, 그 길과 친해질 수도 없다. 또한 길을 걸으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엄청난 경험도 하게 된다. 자신의 주인이 되어 길을 걸으며 길의 주인이 되는 것, 우리가 걷는 이유다.

다운로드.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못된 놈, 소심한 놈, 어리석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