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눈도 오고 날씨도 제법 매섭다. 추우면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연탄 값도 오르고 연탄을 나눠주는 연탄 은행에는 불경기로 인해 기부금액이 줄어들어 걱정이라고 한다. 어제 뉴스를 보니 고독사가 40% 정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종이 박스를 모으기 위해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주변에 힘든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추운 날씨에는 그분들의 마음마저 추울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폭설이 오거나 홍수가 와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기도 하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만 안고 오늘 하루를 보낸다. 그분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길, 건강하고 행복하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함께 창문에 뽁뽁이를 붙였다. 추위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매년 아내는 이 작업을 홀로 해왔는데, 금년에는 함께 할 수 있어서 편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어제는 커튼을 동절기용으로 교체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커튼이다. 이 커튼을 달고 떼고 빨고 말리고 보관하는 작업을 아내 혼자 30년 이상 해왔다. 너무 미안하다. 어제 작업을 함께 하며 아내는 싱글벙글 웃는다. 힘도 들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욱 미안하다. 베란다에 있는 꽃이 추위로 고통받을 것 같아 방 안으로 옮기는 작업도 같이 했다. 아내는 이 쉬운 작업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즐거운 푸념을 한다. 혼자 하니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점점 무거운 짐 드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다. 가능하면 아내가 힘든 물건을 들지 않도록 내가 움직이고 있지만, 늘 같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힘든 물건 옮기는 작업은 내가 돌아온 후에 함께 하자고 아내에게 당부한다. 아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도 혼자 작업을 한다. 내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 아끼는 마음이 고맙고 미안하다.
아침 식사 후 소파에 앉아 TV 예능 프로그램을 아내와 함께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신다. TV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프로그램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같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얘기를 나눈 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이 같이 집안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두 사람이 각자 볼 일들이 많다. 오랜만에 같이 TV를 보며 이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옆에 같이 앉아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고맙다. 이것이 행복이다.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고 옆에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보고 얘기를 한다. 부부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이다. 삶의 가치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공유하고 각자의 모습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이다. 부부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아내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그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부부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이고 스승이고,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것이 부부이다.
부부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삶의 여정은 늘 평탄할 수만은 없다. 풍파도 겪고 순풍을 타고 달리기도 하고, 가끔은 배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원하는 대로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고 바람은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불고, 우리는 그 바람을 타고 가거나 아니면 바람에 역행하며 갈 때도 있다.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가 기억난다. “바람은 바꿀 수 없지만,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 대사는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쓴 글일 것이다. 삶이 힘든 이유는 바람을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 때문이다. 그리고 바람에 대해 욕을 하고 비난을 쏟아내며 바람을 물리치려는 무의미한 노력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나 바람을 물리치려는 행동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중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매우 소모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바람을 바꾼다는 것은 날씨를 바꾼다는 것과 같고, 별의 움직임을 변화시키고, 밤과 낮을 바꾸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욕심일 뿐이다.
삶의 변수는 두 가지가 있다. 통제 가능한 변수와 통제 불가능한 변수이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은 날씨, 국적, 늙어감, 성별, 부모와 형제 등이다. 반면 통제 가능한 변수들에는 우리 노력과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바꾸려고 쓸데없는 노력을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리고 통제 가능한 변수를 활용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삶의 여정 속에 수많은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 상황들 속에서 통제 불가능한 것은 제쳐두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노력하면 힘들지 않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만 한다.
삶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겸손이 매우 필요하다. 주어진 삶을 거부하면 할수록 삶은 더욱 고통스럽게 된다. 일단 수용한 후에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 저항을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결국 번 아웃 상태가 되어 무기력감에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주어진 삶을 수용하고 선택한 길에 사용할 수 있다면 삶의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유는 욕심과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욕심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태도이다. 즉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는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에 대한 선택과 판단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과대평가하며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한다.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늦게나마 겨우 알게 되거나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며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용기와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을 하며 슬기롭게 살아간다.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은 하나의 배(船)다. 노를 한쪽으로만 저어도 안 된다. 양쪽에서 함께 저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항해를 할 수 있다. 바람의 방향에 거스르지 않도록 돛대의 위치를 조정하거나 아니면 올리거나 내리기도 해야 한다. 힘들다고 한 쪽이 노를 젓지 않는다면 배는 다른 곳으로 갈 것이고, 돛대를 조정하지 않아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부부의 삶은 또 우리네 삶은 이와 같다. 같이 노력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주어진 삶의 무게와 방향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 이런 삶의 태도는 항해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나아가 풍랑 속에서도 행복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풍랑에 현명하게 대처하면 풍랑이 행복이 될 수도 있고, 잔잔한 바람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삶은 지치거나 무료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