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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물

by 걷고 Feb 23. 2023

네 명의 선후배가 모여 한 선배의 생일잔치를 즐겁게 했다.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 만나 60대인 지금까지 만나고 있으니 4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사이다. 오랜 알고 지내온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다. 서로 살아온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자신을 감추거나 드러낼 필요조차 없는 편안한 관계다. 가끔 불편한 말을 주고받을 때도 있지만, 그조차 그날이 지나면 더 이상 마음속에 남아 있지도 않고, 다음에 만나면 아무 일도 없는 듯 반갑게 서로를 맞이한다. 마치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지고 나면 파문이 잠시 일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40년의 세월 속에 변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한다. 무척 다행스러운 점은 그 변화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는 점이다.


가장 윗 선배로 내년에 칠순을 맞이하는 선배는 사람들을 대하는데 전혀 걸림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꾸준히 마음공부를 하고 걸으며 예전의 각진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변했다. 지금도 그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다.  한 선배는 바로 얼만 전까지 IT기업의 CEO로 매우 활동적으로 사업을 운영해 온 사람이다. 힘든 시절을 잘 버텨내며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림 없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있다. 나무에 남은 상처를 모두 보듬고 의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막내인 60대 초반인 후배는 가장 어리지만 가장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 관한 배려가 뛰어난 사람이다. 선배가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운전기사 노릇을 자처하고 선배의 가족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마음이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멤버 중 한 명으로 세 명의 멋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다지 마음이 따뜻하거나 배려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매우 까다롭고 불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모임에서도 세 명의 거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비추어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세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고, 나의 모난 성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어서이다. 나의 상황을 배려해서 모임 장소를 내가 가장 편한 곳으로 정했다. 요즘 딸네 머물며 지내고 있다. 송파 근처인데 나를 배려해 일부러 장소를 잠실 쪽으로 결정한 것이다. 나 때문에 다른 세 분은 먼 길을 와야만 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대방이 편안한 장소로 결정한 것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업무 상 고객을 만날 때 외에 개인적인 약속은 내 편의 위주로 결정해 왔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고맙다. 묵언의 가르침을 베풀어주어서.

브런치 글 이미지 1

중식당에 모였다. 후배가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돌렸다. 선물 포장이 예쁘다. 미트 파이를 구입해서 우리 세 명에게 나누어주었다. 집에 들고 왔더니 딸 얘기가 이 가게에서 파이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야만 하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일부러 약속 전에 미리 나와서 우리를 위해 선물을 사서 들고 온 것이다. 그런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이 얘기는 그런 선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놀랍고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후배는 선배 생일을 축하한다면 상품권을 전달했다. 선물을 한 후배와 생일을 맞이한 선배에게 많이 미안했다. 아무런 선물도, 생일 축하 선물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아니 선물을 할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다. 그냥 식사하고 헤어지면 된다는 생각만 하고 그 자리에 나간 것이다. 참 부족한 사람이다. 마음에 여유도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못하는 사람이다.


식사한 후에 근처 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생일을 맞이한 선배는 선물을 포장과 함께 찍은 사진과 파이를 예쁜 접시에 담아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후배의 선물에 감사함을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동생과 함께 맛있게 파이를 먹었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을 올렸다. 다른 선배는 형수님과 함께 커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감사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나는 손주들과 딸이 좋아했고 맛있게 먹었다고 간단한 인사만 보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수준이 너무 다르다. 사진과 함께 감사함을 전한 모습과 그냥 카톡으로 고맙다고 인사한 것 과는 사소한 차이 같지만 실은 매우 큰 차이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마음의 크기가 매우 다르다. 후배의 파이 덕분에 세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이가 가족 모두에게 큰 즐거움과 기쁨을 선물한 것이다. 아름다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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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선물, 선물을 받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선배들의 모습과 나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하며 스스로 참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만 그에 적합한 선물이 떠오를 수 있고, 그 선물을 사러 갈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주변 사람에 관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선물을 카톡으로 보내거나 송금하는 것과는 비록 같은 선물이라고 해도 그 차이가 엄청나다. 직접 가게에 까지 가서 사고 들고 오는 수고를 감수한 정성의 결과물이 선물이다. 앉아서 손가락으로 까닥거리며 하는 선물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한 선배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 후배가 나눠준 선물이 주는 영향력의 여파가 꽤 크게 느껴진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귀찮아하는 편이다.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귀찮은 것이 아니고 받아본 적도 없고 줘 본 적도 없어서 일부러 기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겉으로는 뭐 그런 것을 주고받느냐며 괜히 쿨 한 척한 것이다. 선물을 받으면 기쁘면서도 주는 여유로움과 사랑이 없었다. 받기를 원하면서도 받는 것을 어색해하고, 주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서도 사서 줄 여유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과거까지 끌고 올라가서 예전의 곤궁한 살림 얘기를 꺼내는 것은 매우 비겁한 일이다. 어색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한 물건의 교환이 아니다. 마음의 교환으로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행위다. 또한 선물 덕분에 온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선물은 자신에게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가족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선한 영향력은 그 파급력이 매우 크고 강하다. 어린아이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기쁨을 알게 된다면, 이런 아름다운 나눔의 문화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선물을 베푸는 후배의 모습을 보며, 또 받은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베풀고 표현하는 것이 내게는 무척 어색한 일이다. 비록 몸에 익지 않아 어색한 일이지만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런 나눔을 통해서 풍요롭고  좀  더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좋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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