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빗놀이 가는 날이다. 장마가 어제부터 시작이 되었다. 오늘 호우주의보까지 있었지만, 나는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 좋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비가 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비를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반바지에 샌달을 신었고, 긴 팔 등산복 위에 점퍼를 입고, 우산을 쓰고 베낭은 레인커버로 씌웠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빗소리를 우산 속에서 들으며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다.
큰 길가로 나가니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물장난 하듯이 일부러 고인 물 속에서 발로 물을 걷어차기도 하였다. 옆에 차가 지나가며 물보라를 일으켜서 바지에 물이 묻었지만 기분이 좋다. 만약 정장을 입었다면 아마 뒤에서 욕이라도 한마디 했었을 것이다. 내가 입은 옷 상태와 마음가짐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길동무들과 인사를 한 후에 걷기 시작했다. 오늘 길 안내를 맡으신 나들이님은 오전 일찍부터 오늘 걸을 코스를 점검하고 호우에 대비하여 코스를 변경하였다. 안양천을 걸었다. 개천에는 물이 많이 불어났다. 깊고 넓은 물은 유유히 흐른다. 마치 정지된 듯 흐르고 있다. 얕은 시냇물은 유속이 빠르다. 경쾌하지만 가볍다. 하지만 오늘 안양천의 물은 무겁고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흐른다. 과연 나는 가벼운가 무거운가? 깊은가 얕은가? 잘 모르겠다. 어떤 길동무는 비가 오니 나의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즐거운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비는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다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길동무는 비 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부러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고가철교 밑을 걷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다르고 같은 상황을 맞이하는 태도도 다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와 상호존중이 중요하다.
정자에 한 분이 누워계셨다. 우리는 그 정자에 자리를 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그 분은 우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던지 두세 번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도 하였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자에서 나와 누워 계신 분을 한번 돌아봤다. 무슨 일로 거기에 누워계실까? 머리 위쪽에 컵라면과 소주 병이 보였다. 괜히 그 분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분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잠시 기도를 했다.
천변에 조성해 놓은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고, 각자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하였다. 건너편 다리 밑에서 누군가가 악기를 불고 있었다. 잠시 음악도 들으며 준비해 온 차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고척돔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신기한 듯 구경을 하기도했다.
안양천의 벚나무길은 한여름에 걸어도 햇빛 한 점 들어올 틈이 없어 좋을 것 같다. 오늘처럼 빗속에서 그 길을 걷는 재미는 유별난 재미가 있다.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왕관으로 변하여 다시 솟아오른다. 바닥에 센서를 부착하여 빗방울이 왕관으로 변할 때 형형색색의 빛이 들어온다면 무척이나 환상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빗방울이 음악으로 변한다면 자연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길 안내자와 참석자 모두 즐거운 걷기를 마쳤다. 뒤풀이 하실 분들은 식당으로 가셨고, 나는 집안에 일이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길 안내를 해주신 나들이님과 모든 참석자 분들 덕분에 아주 행복한 우중 걷기를 하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