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모님과 처남 부부와 조카, 아내와 함께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오리구이 전문점으로 꽤 유명한 집이었다. 식당 안은 번잡스럽고 손님이 많고, 종업원은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 후에 종업원이 나타나서 음식을 주문하였는데, 나중에 다른 분이 다시 확인하러 와서 최종 주문이 완료되었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종업원이 보여준 태도는 아주 불손한 태도로 느껴졌다. 오리도 마리를 주문하고 한 마리는 별도로 주문하여 집에 들고 가겠다고 했는데, 마치 여러 명이 와서 한 마리만 주문하고 한 마리는 들고 가는 거냐고 추궁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술을 주문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고, 음식은 식당 도착 1시간 30분 전에 전화로 주문했는데,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주문한 오리 한 마리가 나왔고, 조금 후에 두 번째 오리가 와서 먹으려 하는데, 주인이 뛰어오더니 내 오른쪽 어깨를 치면서 오리를 빼앗듯이 들고나갔다. 좀 더 비싼 음식이 잘못 전달되었다고 하였다. 그 태도가 너무나 기분이 나빴다. 양해를 구하고 들고 가면 되는데, 마치 음식을 훔친 사람 취급하듯 어깨를 치면서 들고 가는 모습이. 그러면서 도미 안 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갔다. 화가 올라와서 그 주인이 지나가길래 불러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디 손님을 치며 음식을 들고나가느냐?’ 반말과 큰소리로 화를 내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상대방은 거듭 사과를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한번 큰소리를 치고 마무리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도 화는 쉽게 가시지 않았지만, 동시에 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장모님도 계셨고, 처남 부부, 조카가 있는 식당에서 큰소리를 친 것이 창피했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기도 했다.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라는 좌절감이 몰려왔다. 큰소리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그 창피함은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거칠게 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 억지로 생각해 낸 것은 식당의 분위기와 종업원들의 태도에 이미 나 자신 이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그 주인의 촉발 요인이 나를 자극시켜서 그렇게 화를 내게 된 것이다. 결국 화가 날 준비를 미리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화를 냈어야만 했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약 한 달 전 호프집에서도 큰 소리로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종업원이 치킨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데, 던지는 듯한 느낌으로 올려놓아서 큰 소리를 쳤던 기억이 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거의 내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식당의 종업원들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는 것은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나의 모습이다. 아주 못된 ‘갑질’이다.
요즘 들어 특별히 화가 나는 상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지난주에 힘들 정도로 바쁜 것 외에는 정말로 신경 쓰이거나 불편한 일은 없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스럽고, 상대방에게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다 다시 어제 화가 났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 마음속의 분노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동시에 이것이 혹시나 지난 세월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아직도 많이 쌓여있다. 평상시에는 잘 조절이 되다가 어떤 상황을 마주치게 되면 통제력을 잃고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간 마음 바라보는 연습과 정화를 통해서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도내면의 분노와 억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날 나는 참으로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었고 열등감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고 억누르며 살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에 빠져 살면서도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인정을 받으려 발버둥 친 것 같다. 인정을 받으면 고분고분 잘 따라가다가 실망으로 변하면 반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나의 의견을 정확하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속에 쌓아두었다. 사업을 하면서 ‘을’의 입장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같은 상황도 열등감, 억울함, 분노로 가득 찬 나에게는 더욱더 힘들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게 약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권위적이 고공 격적으로 대했던 것 같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나이 어린 교수나 슈퍼바이져들의 부당한 태도를 보며 감정을 억누르고 분노를 삭이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들이 결국 나를 상담의 길로 들어오게 만들어주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많이 정화되고 순화되고 정서의 방출을 통한 해소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제의 일이나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리가 되지 않은 과거 대인관계의 묵은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왜 지금 시점에 튀어나올까? 나름대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시점에. 마지막 남은 숙제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분노, 억울함, 폭력성, 거친 마음들이 산적해있다.
선후배, 친구들,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기억도 많지만, 좋지 않은 기억도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감정들이 모여서 지금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 자신에게도 장단점이 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많이 편해졌다. 좋고 나쁜 감정들을 모두 수용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예전의 상처로 인해 다른 상처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 방법은 실은 별거 아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편안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에는 많은 부조리와 불공정함이 존재한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갑질’ 소동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요즘 우리가 그에 저항하는 소리를 내는 이유는 세월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얘기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내면에 쌓여있는 감정들도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 표출된 것이다. 묵은 감정은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서 나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정화하는 것이다. 속에 남아있는 묵은 감정은 떠오를 때마다 그 당사자를 생각하며 연민의 감정을 보내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앞으로 마주치는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또한 늘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도록 마음속 여유 공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점점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화를 내었던 호프집과 오리집 종업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참회를 합니다. 장모님과 함께 있었던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참회를 합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