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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Feb 18. 2024

시절 인연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삶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지나게 된다. 같은 삶을 살아도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존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존재도 있다. 하지만 삶의 의미나 가치를 판단하는 어떤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존재의 삶에 대해서도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도 있고 그 반대의 존재도 있지만 이는 행위의 결과일 뿐, 존재 자체는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이름을 남기든, 그렇지 않든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고, 숭고하고 거룩하다. 본성은 그대로인데, 보이는 모습만 달리 보일 뿐이다.

     

‘걷고의 걷기 학교’를 최근에 시작했다. 걷기를 통해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다. 힘든 시간을 걷기를 통해 극복하며, 걷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자각했고 그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다. 물론 신체 운동만을 위해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걸으면서 마음 건강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걷기와 마음챙김을 접목한 ‘마음챙김 걷기’를  걷기 학교에서 매주 진행하고 있다. 이제 4주 지난 시점이고 체계가 잡혀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기본적인 원칙은 갖고 있다. 침묵 속에서 발의 감각과 청각에 집중하며 걷는 원칙이다. 시작 전 스트레칭과 마친 후 나누기를 하고 싶은데 분위기에 따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나의 원칙을 참가자들에게 강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가자들의 흐름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흐름을 따라가고 참가자들과 얘기를 나누며 진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체계가 좀 더 안정적으로 잡힐 수 있을 것이다. 평생 할 일이기에 급히 서두를 필요도 없고, 나의 원칙만을 고집하며 진행할 필요도 없다.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정해져 있으니, 그 프로그램만 충실하게 지키며 운영하면 된다. 그 외의 상황은 유연하게 대처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마음챙김 걷기’에 관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한 것 같아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예전에 강의했던 호흡명상과 마음챙김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며 수정과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기본 초안은 오늘 아침에 마무리되었다. 2월 26일에 지인이 운영하는 ‘고수에게 길을 묻다’라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여 ‘마음챙김 걷기와 호흡 명상’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인터뷰 자료도 정리해서 발송했다. 오리엔테이션 자료와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며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보기도 했고, 책을 읽은 후 쓴 후기를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월간 ‘불교문화’ 잡지사에서 ‘마음챙김 걷기’에 관한 원고 의뢰가 들어와서 지난달에 원고를 보냈고, 3월호에 잡지가 발간된다고 한다. 오랜 기간 생각해 온 ‘걷기 학교’ 운영, 마음챙김 걷기 진행, 유튜브 인터뷰와 잡지사 기고 등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며 ‘걷고의 걷기 학교’가 시절 인연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들어 음악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악을  너무 몰라서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 밭이 많이 건조한 사람이라 음악을 통해 건조함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르바나 오케스트라를 운영한 강형진 단장님께서 음악을 보내 주시며 맞춤 교육을 시켜주고 있다. 길동무 도니는 모차르트 전집 음반 40매 세트를 선물로 전달해 주며 음악세계에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는 매시지도 보내왔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니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신다. 무선 이어폰을 구입해서 걸을 때는 음악과 함께 걷는다. 강단장님이 보내 주신 곡은 유튜브 계정에 별도로 저장해 놓았다. 그중 몇 곡은 자주 들으며 나의 상황에 따라 언제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해졌다. 음악이 좋은 친구가 되고 길동무가 된다. 음악도 나와 시절인연이 맞아서 최근에 나에게 왔다. 내가 간 것인지, 음악이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든 시절인연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도니 님이 선물한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시절인연, 참 좋은 말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먼저 서두른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늦춘다고 될 일도 아니다. 스스로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 저절로 다가온다. 불교 수행에서도 스승을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스승을 찾아 나서며 꾸준히 정진하면 스승을 만날 시절인연이 저절로 온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찾아 나서도 스승을 만날 수 없다. 화두 일념으로 수행하시는 수좌들은 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치거나, 과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깨치게 된다고 한다. 어떤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중요하다. 풍선에 바람이 가득하면 저절로 터지듯 화두일념으로 화두의심이 가득하면 저절로 타파하게 된다. 시절인연이다. 다만 시절인연을 멍청하게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기다리고 있다고 시절인연이 오지도 않는다. 매 순간 하고 싶은 일 또는 하는 일에 집중하고, 발원하고, 정진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걷고의 걷기 학교도 그렇고 음악을 듣는 것도 그렇다. 시절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 벌이지고 있는 일이다.          


걷기 학교에 동참하는 모든 인연들, 음악의 귀머거리인 나의 귀를 트이게 만들어주기 위해 애써주고 응원해 주는 강단장님과 도니 님, 그간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의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모두 내가 만든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난 모든 사람 역시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내가 만든 인연들이다. 상황과 인연도 모두 시절인연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떠날 상황과 사람은 떠나고,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만나게 된다. 떠남을 아쉬워하거나 붙잡지 말고, 새로움을 거부하거나 밀어내지 말자. 모두 내가 만든 일이다. 즉 나의 업보(業報)다. 매 순간 주어진 상황과 사람을 수용하며 시절 인연을 기다리는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 좋은 시절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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