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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ug 11. 2024

해파랑길 6회 차 후기

건강 나이

오랜만에 일주일 내내 업무를 보기 위해 경기도를 누비고 다니다 보니 살아있다는 활력을 느끼고 아직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존재가치도 느낀다. 하루 종일 내내 앉아서 업무를 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이 든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더욱 신경 쓰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자세도 가능하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업무를 봤다. 이 업무를 보는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굳이 이럴 필요조차도 없이 편안하게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신체의 노화 때문에 자신의 노화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또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함께 업무를 본 사람들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데, 피곤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업무를 보는 데 별다른 지장은 없다고 답변한다. 평상시 걷기를 통해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무리가 없다는 얘기를 보태기도 한다. 이런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이 들었다는 것을 또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 같다. 나이 든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언행을 하며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자기 관리를 해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평상시 보다 한 시간 늦은 밤 11시에 만나 해파랑길 걷기 위해 출발한다. 그 늦은 시간에도 날씨는 전혀 누그러들지 않고 습기가 많아 후텁지근하다. 무더운 날씨가 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온열질환자도 늘어나고 이로 인한 사망사고 소식도 들린다. 쪽방 촌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계신 분들도 있다. 이분들에게 무더위는 참기 힘든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무더위로 지친 많은 분들이 빨리 회복되시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무더운 날씨지만 시원한 냉방이 되는 승합차를 타고 이동한다. 차 밖은 더위 지옥이고, 차 안은 냉방 천당이다. 무더위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얘기지만 차 안은 약간 추워서 옷을 끼어 입어야 한다. 다섯 명의 길벗은 날씨와 상관없이 걷는 사람들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출발한다. 자주 함께 걷는 나이가 비슷한 길벗이다 보니 어떤 말을 해도 걸림이 없고,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준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길벗 한 명이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강 나이가 81세 정도 된다고 하며 오래오래 함께 걷자고 한다. 몸 관리를 잘하면 그 나이까지는 혼자 움직이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수년 간 각종 노환으로 고생을 하며 세상 소풍을 마치게 된다. 소풍 얘기를 하니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의 일부 내용이다. 그는 세상살이를 소풍이라고 말했다. 그의 동심이 드러난다. 다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말하는데, 그는 세상살이를 늘 마음 설레는 소풍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 그의 삶이 그랬다고 한다. 모든 욕심도 내려놓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소풍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천진난만한 텅 빈 마음이 그립고 부럽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텅 빈 충만’이다.      


우리 노후자금의 80%를 노환 관리를 위해 쓴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평생 열심히 근무해서 벌은 돈의 대부분이 노환 관리로 사용된다는 이 기사를 읽으며 참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질병 속에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유한한 생명이기에 어차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실존적 고통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고통 속에 인상 찡그리며 죽어가기보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랜 기간 나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며 타인에게 의탁하지 않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어차피 노환은 찾아오는 손님이다.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님을 거부하거나 손님의 방문을 저항하지 않고, 손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건강 나이 얘기를 들은 한 길벗은 “가능하면 오래오래 걷기 위해 걷는다.”라는 말씀 하며 걷는 이유를 밝힌다. 걷기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가 걷기 모임에 나와 새벽부터 걷는 이유는 우선 걷는 것을 좋아하고, 가능하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오랜 기간 움직이며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길벗은 손녀가 왜 걷느냐고 물으니 “걸으면 즐거워져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걸으며 행복하고 즐겁고,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걸으며 가능하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을 위해 우리는 걷는다. 게다가 걸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걷는 동안에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자기 스스로 외부의 일을 일부러 끌고 와서 그 일과 씨름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길을 걸으며 한 자연인으로서 걷는 그 시간만이라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다른 길벗은 길을 걸으면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우선 걸으면 즐겁다. 그리고 자유를 느낀다. 길 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리고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의 발로 직접 걸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결정과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자신이 갖고, 삶의 책임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수용하며, 자유를 찾아 만끽하며 걸으며, 게다가 건강까지 챙긴다면 굳이 ‘왜 걷느냐?’는 질문보다는 ‘왜 걷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질문이 된다. 며칠간 업무로 바쁘고 지친 몸을 걸으며 회복한다. 사람들에게 걸으며 지친 심신을 회복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듣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걸으면 심신의 피로감이 사라지고 자신 내부에 에너지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샘물에는 활기찬 에너지가 모이고 쌓인다. 그 힘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고, 그 힘으로 주변 사람과 나누며 살아간다.      


해파랑길을 마친 후 원래 계획은 남파랑길을 걷는 것이었는데, 건강 나이를 들으며 ‘DMZ 평화의 길’을 먼저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은 주로 산으로 이루어진 길로 다른 길에 비해 고도가 높은 편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며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하지만 오랜 기간 걸어온 경험으로 천천히 여유롭게 걷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생체나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피로감도 쉽게 오고, 회복력은 늦어진다. 힘든 길을 먼저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 방법과 속도로 코리아 둘레길을 모두 완보하려면 한 10년은 걸릴 것 같다. 10년 뒤 나의 나이는 70대 후반이 된다. 목표가 있으니 적어도 이때까지는 걷기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주변 길을 편안하게 산책하며 소풍 가듯 삶을 늘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건강 나이를 듣고 해파랑길을 걸으니 이 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걸으며 보는 바다의 풍경, 파도소리, 바다 냄새, 만났던 사람들, 함께 걸은 길벗의 지금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모든 것을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글로 쓰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매 순간 맞이하는 모든 것을 더욱 온전히 그리고 매우 진하게 느끼고 싶다. 풍경과 냄새, 소리, 길벗과의 대화, 자신이 느끼는 희열과 고통 등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고 고맙고 매우 소중하다.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이 순간을 놓치면 삶은 없다. 매 순간이 삶이고, 그 순간만이 진실이며, 그 순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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