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몸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마음을 바라본다. 마음도 몸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산만하게 움직인다. 한참 걷다 보면 어느새 수많은 생각은 사라지고 빨리 오늘 걷기가 끝나고 쉬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할 때도 있다. 생각조차도 무겁고 힘든 순간이 온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를 비쳐주는 거울이 된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에는 어떤 모습이나 소리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함께 걷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세상에서 벗어나야만 주변과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걷기 좋은 날씨와 몸 상태가 좋은 상태, 또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걷는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상황은 즐거움의 대상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괴로움의 대상이 된다.
두 극단의 상황, 즉 매우 힘든 상황과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의 진면목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한다. 좋은 상황에서는 모두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이지만,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 갑자기 사람이 돌변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매우 힘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어쩌면 그 사람의 참모습일 수 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모든 권력과 힘이 주어진 상황에서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모든 특권과 전권을 부여해 주면 된다. 주어진 특권을 이용하여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을 오직 자신만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 상황에 해당된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주어진 모든 특권을 악용한다. 국민을 위한 권리와 의무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평상시 보이는 모습은 사회적 가면을 쓴 모습이다. 그 가면 뒤의 모습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 강한 체하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가장하기 위해 밝음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결점을 가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고, 결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지한 당당함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힘든 과정을 통해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과거의 인연을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의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하고 자신의 신분 상승만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행동들은 일종의 보상 행동일 수도 있다. 보상 행동은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는 역할을 하고 점점 더 가면이 되어가기 위해 애쓰다 결국 가면이 자신의 모습이 되어간다. 즉 자신을 어느 순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찾지도 않으며 가면을 위해 평생 몸과 마음을 바친다.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각 개인의 삶의 방식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듯 타인의 가치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가치만을 강조하며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이 무조건 옳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며 타인의 언행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을 쏟아낸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상황을 접하게 된다. 이런 삶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가면의 유혹에 빠져 중심 잡는 것을 어느 순간 포기하고 가면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면의 노예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 황금빛 가면을 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점점 더 가면의 노예가 되어간다. 주인은 사라지고 가면의 노예만 남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요즘 길 안내자 역할을 하며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경기 둘레길을 1년 이상 거의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많은 상황들을 맞이한다. 대부분 길동무들에 대한 감사함과 길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지만 가끔은 불편한 사람과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힘든 상황과 불편한 사람을 만나며 나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된다. 매우 소심한 사람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또한 사람들의 감정에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한 편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이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에 신경 쓰는 것과는 다르다. 누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다만 함께 걷는 사람들이 서로 불편해하고 반목하는 경우에 그 불편함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져 힘들어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상담 장면이라면 나름 노력해 볼 수도 있지만, 걷기 위해 모인 동호회 모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개입한다고 해서 풀릴 일도 아니다. 가끔 이런 상황에서 무신경하게 대처하거나 별일 아닌 듯 툭툭 털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힘든 상황은 마음공부의 기회가 된다. 최근에 예전에 읽었던 윗빠사나 명상에 관한 책과 담마 코리아 수행법에 대한 책을 세 권 읽었다. 이 책에서 불편함의 이유와 불편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했다. 불편함의 이유는 바로 오랜 기간 쌓아온 업이고, 이 업이 상황에 따라 발현하며 고통을 만들어낸다. 이 고통은 다시 업이 되어 더욱 강한 업이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명상은 일어나는 생각을 흘려보내는 작업이다. 끌려 다니면 더 강한 업이 되지만 흘려보내면 사라진다. 업이 원인이고 해결책은 명상이다. 명상은 일상에서 수행할 수도 있고, 특히 걸으며 하는 걷기 명상이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아주 좋은 명상법이다. 길을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에 끌려 다니지 말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생각을 감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걷기 명상이 있다.
삶 속에서 만들거나 발생하는 모든 상황이 바로 수행이다. 따라서 길을 걷는 것도 수행이다. 또한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상황이 바로 수행의 대상이 된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부처가 될 수도 있고 마귀가 될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 보면 부처요,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 속에서 바라보면 마귀가 된다.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고, 나 자신의 주인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걷는다. 걷기가 바로 수행이다. 걷기는 주인을 찾겠다는 또 찾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나는 나의 주인을 찾기 위해 걷는다. 내가 걷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