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다닐로 자넹 지음)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불교 명상 수행을 많이 해 온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호흡법이나 의식을 챙기는 기법 등이 요즘 '마음챙김'으로 통용되고 있는 sati(mindfulnes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의식적 걷기’가 자신과 세상을 탐험하는 좋은 수단이고, 그런 탐험을 즐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외부 세계와 소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홀로 생각하며 걷기도 하고 길동무와 어울려 즐거운 대화를 하며 걷기도 한다. 함께 걷는 즐거움도 크지만 홀로 걷는 즐거움도 그 나름대로 멋과 재미가 있다. 가끔 홀로 걷기를 즐기는 편이다.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과 함께 머물며 감각에 집중하며 걷는다. 때로는 어떤 상념에 빠져 걷기도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걷는 순간에 느끼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며 걸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생각을 따라가거나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걷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열린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걸으려고 한다. 과거의 기억에 묻히거나, 미래의 불안감에 휩싸이거나, 쓸데없는 망상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 걷고 있는 이 순간에 느끼는 모든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내고 있다. 그런 순간에 현재는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를 통해서만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또한 현재로 돌아오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걷기를 하면서도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현자는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라’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말씀을 하셨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은 말씀이다. 몸이 머물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만이 우리가 온전히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면 우리는 현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의식적 걷기를 위해 다섯 가지 단계를 안내하고 있다. 호흡에 집중하기, 발의 느낌에 집중하기, 내면에 집중하기, 주변 환경에 집중하기, 대상 없는 것에 집중하기. 이 중 한 가지를 택해서 걸어도 되고, 또는 이런 순서대로 단계를 만들어 연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흡에 집중하며 걷는 것은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요한 작업이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들숨과 날숨 시 코 밑이나 코 주변에 느끼는 바람의 감촉에 집중하며 걸으면 된다. 처음에는 호흡의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호흡의 느낌이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매우 미약하게, 또는 시원하거나 약간 따뜻한 바람의 감촉 등을 느낄 수 있다. 일단 마음이 차분해지면 다음 단계인 발의 감각에 집중하며 걷는다. 발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이 있다. 발과 지면의 접촉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발의 온기나 냉기를 느낄 수도 있고, 발바닥의 피부와 양말이 닿는 감촉 등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발이 앞으로 나아가며 바람과의 마찰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감각으로 돌아오면 된다. 상념과 씨름하거나 걱정거리를 없애려 하면 할수록 이들의 크기와 위력은 점점 더 세진다.
발의 감각에 집중이 어느 정도 된 후에는 내면의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며 걷는다.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유쾌한 감정과 불쾌한 감정, 그 외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런 감정과 생각이 떠오를 때 가만히 지켜보면서 걸으면 된다. 따라가면 갈수록 감정과 생각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그냥 단순히 알아차리면 된다. 관찰하듯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사라지고, 다시 다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른다. 또다시 흘려보내면 된다. 명상은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지켜보며 흘려보내는 작업이다. 걷기 명상은 걸으며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 마음의 흐름을 지켜보며 떠내 보내는 것이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 감정, 마음 등은 모두 과거의 결과물이다. 이들에 휩쓸려 다니면 현재에 살면서도 과거에 머무는 꼴이 된다. 즉 현재가 과거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 '지금-여기'에 머무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기억, 감정, 경험 등이 떠오를 때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면 사라진다. 지환즉리 이환즉각 知幻卽離 離幻卽覺 (그것이 환영인 줄 알면 떠나면 되고, 떠나면 바로 깨달음이다.)이다. 걸으며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이미 지난 과거의 환영일 뿐이다. 환영은 환영임을 알아차리면 저절로 사라진다. 환영과 싸우는 짓은 홀로그램 영상과 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이제 모든 환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자연을 감상할 준비가 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을 하면 된다.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명상의 대상이 되고 집중의 대상이 된다. 자연 속을 걸으며 새소리 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낙엽을 밟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청각 걷기 명상이다. 바람을 느끼며 걷거나 비를 맞으며 걷는다. 때로는 나무를 어루만지며 잠시 쉬기도 한다. 촉감 걷기 명상이다. 꽃 향기를 맡으며 걷기도 하고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후각 걷기 명상이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 작은 곤충의 움직임, 개미들의 행렬, 계절별로 변하는 자연의 색채 등을 보며 걷는다. 시각 걷기 명상이다. 잠시 휴식하며 준비해 온 간식을 먹는다. 맛을 감상하며 먹고 마신다. 미각 걷기 명상이다.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또는 떠오르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며 걷는다. 의식 걷기 명상이다. 주변 환경을 느끼며 온 감각을 활짝 열고 걷는다.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다시 감각으로 돌아오면 된다. 이 모든 여섯 개의 감각기관,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의식하고 알아차리며 걷는 것이 의식적 걷기다.
호흡, 발의 감각, 내면의 소리, 주변 환경을 모두 느끼고 집중하며 걸을 수 있게 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걷기 명상의 대상이 된다. 굳이 어떤 특별한 것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것이 무엇이든 단순히 느끼고 바라보고 알아차리며 결으면 된다.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걸으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고 걸을 수 있다.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걸을 수 있게 된다. 모든 걸림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참 자유인이 된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암벽 등반 등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할 때에는 집중하기에 다른 잡념이 들어 올 틈이 없다고 하면서 의식 집중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암벽 등반이나 기타 난도 높은 체험을 할 때 집중하듯이 걷기를 할 때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의식을 집중하며 하면 그 일 자체에서 몰입의 희열도 느낄 수 있다. 또한 호흡과 걸음을 함께 하는 방법인 '아프간 워킹'도 소개하고 있다. 들숨날숨의 수와 걷기를 맞추며 걷는 방법이다. 즉 걸음 수와 호흡을 맞추며 걷는 방법이다. 각자의 호흡의 깊이에 따라 걷기에 맞는 걸음 수를 결정하면 된다. 이 방법은 틱낫한 스님께서 대중을 상대로 걷기 명상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외에 준비 운동의 중요성과 침묵 걷기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도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걷기를 한다. 아침에 기상하여 화장실에 가고, 옷을 챙겨 입고, 식탁으로 이동하고, 출근하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일정 거리를 걷는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가기 위해 걷고, 손님을 만나기 위해 걷기도 한다. 걷기는 우리의 일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의식을 하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걸을 뿐이다. 같은 행동도 의식을 집중하고 느끼며 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투아레그족의 속담에 "아무 할 일 없이 앉아있는 것보다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걷는 게 낫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몸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우리에게 보답을 한다.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일단 나와서 걸어보자. 그리고 잘 되지 않더라고 의식적 걷기를 연습하며 걸어보자.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의식적 걷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