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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Apr 13. 2017

사랑의 역설

<나의 사랑, 그리스>는 달콤하지 않다.

스포일러: 보통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염원한다. 대립을 이루는 이념조차 결국에는 평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갈등을, 갈등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결국 무고한 희생이 따르는 전쟁을 초래한다. 성취를 위한 일련의 행동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을 평화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행동의 역설은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언어는 나와 당신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세 가지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채택한 3부 구성은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먹는 한 가정의 가족애의 자리를 완전히 소멸시킨다. 열두 구획으로 나누어진 영화의 포스터 역시 인물들을 각각의 칸으로 나누고 단절시키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이어져 있는 듯 이어져 있지 못하다.

열두 구획으로 나누어진 영화의 포스터

 작중 그리스인들은 모두 이방인과 사랑에 빠진다. 1부 [부메랑]의 다프네는 시리아 이민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지며 2부 [로세프트 50mg]의 지오르고는 스웨덴에서 파견 온 엘리제와, 3부 [세컨드 찬스]의 마리아는 독일의 세바스찬과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국적이 달라서 사용하는 언어도 살아온 문화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언어적 한계가 불러온 비소통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아닌 좋은 매개로써 작용한다.


 다프네와 파리스의 사랑은 자신의 언어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그 표현을 가르쳐줌으로써 깊어진다. 지오르고와 엘리제는 서로를 향한 비난 어린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아 대립을 모면하고 사랑의 싹을 틔우며, 마리아와 세바스찬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간다. 그들은 모두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사랑 자체의 유미(唯美) 속에 행복을 만끽하던 이들은 돌연 현실을 마주한다. 이들의 결말은 결코 해피앤딩이 아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 속 사랑에 빠진 세 커플

 <나의 사랑, 그리스>의 행동의 역설의 모티프로 작용한 것은 그리스의 에로스 신화다. 아프로디테의 명령을 잊은 채 아름다운 미모의 프시케와 사랑에 빠진 에로스는 그녀를 아내로 삼고 매일 밤 사랑을 나눈다.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아선 안된다고 경고하지만, 프시케는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려다 등불의 기름을 떨어뜨리고 사랑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을 잃는다.


 신이라는 에로스의 처지가 금기를 만들었듯 파리스와 엘리제에게 금기로 작용한 것 역시 자신들의 처지다. 파시스트들로부터의 위협이 도사리는 그리스에서 파리스는 다프네를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회사의 구조조정을 전담하고 있던 엘리제는 지오르고와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이어나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렇듯 신화와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사랑의 절정기에서 사랑을 잃는다. 그렇다면 이 로맨스 영화는 진정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랬더라면 영화의 결말은 해피앤드였어야 하지 않을까.

여섯 명의 인물, 그리스라는 하나의 공간

 <나의 사랑, 그리스>(2015) 속 그리스는 세기말적인 분열에 처해있다. 불평등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파시스트들은 시리아 이민자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있으며, 기업의 이윤 확대를 위한 구조조정은 개인의 인생에 일말의 관심 없이 신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영화의 현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랑이 과연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국가 부도 사태라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란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프시케의 모습을 보노라면 사랑이란 깊어질수록 믿음보다는 의심을 낳는다. 파국의 국가에 필요한 것은 무형의 사랑이라기보다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이상적 형태의 사랑을 무책임하게 조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의 당대 현실을 반영함으로써 로맨스를 넘어서는 길을 택한다.




 평화와 화합, 인류애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에 반발하고 평등을 주창하지만, 영화에 의하면 진정 필요한 것은 뜬구름을 잡는 사랑 타령도 이념에 함몰되어버린 극악무도한 행동도 아니다. 사랑과 평화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과 올바른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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