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소설가 김영하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뉴욕의 애플스토어에 밀집되어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키에 머리가 하얀 노인이 신나게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기에 가까이 가보니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이었다고 한다. 이어 김영하 작가는 예술가로서 죽어서 전설로 남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들과 호흡할 수 있는 예술가의 삶도 꽤 멋져보였다고 했다.
전성기 시절부터 데이브 브루벡은 대학교에서 재즈 공연을 하며 젊은이들과 호흡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스윙이 없는 재즈’라고 칭했는데, 스윙이 없는 건 재즈가 아니라던(It don’t mea if it ain’t got that swing)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앙꼬 없는 붕어빵같은 소리냐고 분노했을 법한 말이다. 게다가 스탠더드 넘버 하나 없이 변박 투성이의 앨범을 발매하는 고집 역시 음반제작자의 화를 돋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젊은이들은 달랐다. 그의 음악에 열성적으로 반응했고 그는 그들의 환호에 공연으로 보답했다. 술집에서나 연주되던 음지의 음악이었던 재즈를 대학이라는 양지로 무대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과감한 시도 덕분이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추측해보건대, 재즈라고 하면 응당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응짜응짜’하는 4박자 스윙리듬에 식상함을 느꼈을 법하다. 나 역시 그랬는데, 복잡한 프레이즈를 자랑하는 비밥이나 흑인들이 자랑하는 하드밥이나 박자감에 있어서는 재즈 고유의 느낌을 유지하고 있기에 듣다보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Timeout>은 확실히 다르다.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 관심이 간 곡은 단연 ‘Take Five’였다. 5살짜리 우리 딸도 ‘저거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소리칠 정도(사실 처음 딸아이가 처음 이 얘기를 했을 때, ‘우리 딸 음악신동 아닐까?’했다. 딸아이와 함께 타고 있는 차 안에선 언제나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로 유명한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앨범에서 가장 재미있는 곡은 앨범의 첫 곡 ‘Blue Rondo à la Turk’이다. 세상에, 재즈에서 8/9박자라니.
'Take Five'의 작곡자이자 저작권료 왕, 폴 데스몬드
곡이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반복되는 타건부터가 충격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폴 데스먼드Paul Desmond의 알토가 쑥 들어오더니 원래 4박자 스윙이었던 것처럼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4박자에 익숙해졌다싶을 무렵 8분 음표로 무장한 피아노가 원래 내 자리였다는 듯 자리를 꿰차고 9박자로 바꾸어버린다. 그 사이에는 조 모렐로Joe Morello의 폭풍 같은 드럼이 펑펑 울리며 심장을 때린다. 한 마디로 박자와 박자 간에 벌어지는 전쟁 같은 곡이다. 이런 곡을 가장 처음 배치하는 배짱! ‘당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걸 들려주지.’라는 데이브 브루벡의 신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날, 음향을 크게 틀어놓은 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박자를 짚어가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이야’하는 탄성을 질렀다.
당시 젊은이들도 나와 같은 기분 아니었을까. 갑작스러운 박자의 변화에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이내 그 신선함에 격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신선함. 그것이 80이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젊은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창의성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변박’을 외쳤다는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라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변박을 재즈에 접목시킨 결과물이었다. 제자가 자신의 뜻을 받아들어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스승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자에게 자신 있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색깔을 지니고 있었기에 데이브 브루벡이라는 걸출한 제자가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나는 어떤 색깔을 지닌 교사일까 생각해본다. 평소 국어를 가르친다는 말보다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가르친다는 말을 더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그것들을 참 힘들어한다. 지금이야 그나마 젊으니까 그럭저럭 아이들이 따라주지만(따라주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백발이 되어도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젊디젊은 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함께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의 상징적인 장소인 애플스토어에서 청년들과 함께 놀았던 노년의 데이브 브루벡이 존경스럽다. 그런 그를 가르친 미요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