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서 벗어나야 보인다

소니 클락 Sonny Clark

by 이락 이강휘


앨범 재킷을 구경하는 것도 재즈 감상의 주요한 재미 중 하나다. 앨범을 제작하는 의도는 판매 수입을 위한 것이니만큼 제품에 허접한 사진을 실었을 리 만무한 일. 그러니까 나 같은 사진 문외한에게 앨범 재킷 사진 구경이란 가만히 앉아서 예술 감상이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일본의 비너스 레코드는 매력적인 여성을 피사체로 담은 재킷 사진을 활용하는데 3B(Beaty, Baby, Beast)를 효과적으로 적용한 광고 사례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마케팅 공부에 아주 유익하다.(진짜다! 마케팅 공부를 위한 감상이다.)

이 여인의 농염한 눈빛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열었겠나.


재즈 앨범의 재킷은 상업적 용도 이외에도 그 레이블의 추구하는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ECM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몽환적인 풍경을 주로 담는데 신비롭고 신성한 음악을 추구하고자 하는 레이블의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블루노트는 뮤지션의 얼굴을 파란 필터를 입혀 재킷 사진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건 뮤지션을 중심으로 음반을 제작한다는 블루노트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이런 느낌이 전형적인 블루노트 스타일

그러나 특이하게도 블루노트에서 발매된 <Cool Struttin'>에는 소니 클락 Sonny Clark의 사진이 없다. 대신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미끈한 다리와 삐뚤빼뚤하게 놓인 ‘Sonny Clark’과 ‘Cool Struttin'’라는 글자가 있다. 이 재킷 사진의 여파 때문인지 도입부를 들을 때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소니 클락은 앨범에 자신의 사진을 빠진 것에 실망했다고는 하지만 ‘쿨한 발걸음’이라는 제목의 곡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한 재킷은 찾기 힘들지 싶다. 블루노트가 유독 <Cool Struttin'>에서는 여성의 다리를 피사체로 했다는 것은 아마도 곡의 느낌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음반에 담아내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Cool Struttin'’은 재미있는 곡이다. 트럼펫과 색소폰의 합주로 천천히 하지만 리드미컬하게 시작하는 도입부는 쿨한 발걸음이라는 곡명을 확실하게 구현한다. 이어 소니 클락의 통통 튀는 듯한 탄력적인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소박하지만 재기 발랄한 리듬을 구현하고 있는데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곡의 분위기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재치를 발휘하는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도 일품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등장하는 베이스의 운궁 연주는 무척 근사한데, 보통 재즈의 운궁은 압도적인 웅장함으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반면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는 폴 체임버스 Paul Chambers의 활 놀림은 곡 전반에 흐르는 경쾌함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곡을 마무리로 이끌어가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Blue Miner’도 매력적인 곡이다. 세션들이 하나같이 멜로디가 강조된 즉흥연주를 들려주니 초심자들도 능히 좋아할 만하고 제목과 달리 밝고 흥겨운 분위기라 지루한 차 안에서 듣기에도 그만이다. 두 곡 모두 소니 클락이 작곡한 곡인데, 이에 비한다면 스탠더드 곡은 오히려 밋밋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가.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미국에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뮤지션의 얼굴 대신 여인의 다리를 앨범 재킷에 쓰는 과감한 시도도, 내로다 하는 뮤지션들을 불러 모아 세션을 결성한 대범한 투자도 말짱 도루묵이 될 뻔한 찰나, 이 앨범이 태평양을 건너가 일본에서 대박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이후로 미국 내에서도 재평가를 받게 되는데 지금 용어로 말하자면 차트 역주행이 일어난 셈이다. 같은 곡을 들어도 이렇게 다른 평가를 내리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무리를 이루며 사는 본능을 지닌 생물체를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 부른다. 사회적 동물들이 만들어낸 사회 조직체에서는 필수 불가결하게 서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학교라는 공간도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서열이 존재한다. 학기 초 중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서열 정리를 위한 전쟁으로 분주하다. 학교 조직에서 가장 중시되는 기준은 아무래도 성적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장은 수능 시험장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있다. 감독관으로 들어가 시험지를 나눠주면 아이들은 OMR카드에 자기 이름을 쓰는데, 이때부터 기운이 서늘하다. 시험 시작종이 치면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뺨이 얼얼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더 높은 고3 교실의 긴장감도 이 정도는 아니다. 왜냐, 이 아이들은 대강 자신의 서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타이슨이 이랬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존나 처맞기 전에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기에 고3 애들은 성적이라는 상대에게 이미 너무 많이 맞았다.

타이슨 형은 그렇게 말해도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서열이 뒤쳐졌다고 다른 사회에서 그 서열이 유지되라는 법은 없다. 조직은 각각 필요로 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 다른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일치된다는 것은 신화일 뿐이다. 물론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지독하게 공부 안 하던 아이들이라도 사회에 나가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블루노트라는 레이블이 지닌 아우라를 무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일본에서의 소니 클락의 인기를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그 요인을 재킷 사진에 담긴 묘한 섹시함. 앨범 재킷에 쓰인 폰트의 독특함. 그리고 그것들이 곡과 잘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본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은 레코드였지만 미국에서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고, 일본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지금의 소니 클락을 만든 건 소니 클락인가 아니면 일본의 재즈들인가.


어느 날 백화점에 갔더니 학교에서 사고뭉치였던 녀석이 나에게 ‘선생님!’하고 인사를 한다. 고3 시절 성적이라는 강적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 수업 시간이면 항상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던 아이였다. 잠깐 와보시라며 나를 잡아끌더니 홍삼 샘플과 더불어 이것저것을 챙겨준다. 알바로 시작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어서 계속한단다. 돈도 꽤 많이 모아서 결혼자금도 어느 정도 모았단다. 요즘에는 일 하면서 안 자냐니까 졸업하니까 하나도 안 졸린다며 웃는다. 지금 이 훌륭한 종업원을 만든 건 이 아이인가 학교와는 다른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봐준 건강식품매장 사장님인가. 그게 누구든 간에 적어도 학교는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홍삼세트를 구입했더니 직원 할인까지 해준다. 제자는 키우는 건지, 제 스스로 크는 자를 의미하는 건지. 이럴 땐 무조건 적으로 후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하마터면 마케팅 공부 못할 뻔했다.

한 사람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법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다양한데 학교라는 조직은 성적이라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기준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하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미국 재즈 팬들의 과오로 내가 <Cool Struttin'>의 멋진 재킷 사진을 (마케팅 공부의 일환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뻔한 것처럼 한 아이의 유능한 재능을 땅 속에 묻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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