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윤진이라고 하자.)의 글을 봤다.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글이었는데 필리핀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과 빌리의 경험을 연결시킨 글이었다. 인종차별을 경험했던 일화는 이랬다. 필리핀에 갔을 때였는데, 맥OOO 종업원이 영어를 잘 못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일부러 이것저것 묻고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주문을 하게 만들었단다. 윤진이는 화가 나서 막 따졌는데 옆에서 종업원이 쿡쿡 웃고 있는 걸 보고 매우 불쾌했다고 했다. 글의 전체적 맥락을 봤을 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영어를 못하는 아이를 골려먹은 거지 인종차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었으나 빌리가 겪은 인종차별과 자신의 경험을 워낙 유기적으로 연결해놔서 보기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섣불리 그 일화에 손대면 글이 다 망가질 수 있어서 그냥 뒀다.
나는 3학년 수업을 전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2학년인 윤진이를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최근 교내에서 진행하는 책 읽기 프로그램을 같이 한 터라 윤진이의 꿈이 신문기자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윤진이를 불렀다.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을 잘 썼고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이걸 읽어보라고 책을 두 권 던져줬다. 하나는 인권에 대한 교양서적이고 하나는 마틴 루서 킹의 자서전이었다. 읽기 만만치 않지만 이 친구라면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윤진이는 연신 ‘오~’하는 감탄사를 내뱉고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뭘 감사까지야. 겸연쩍어져서 그 책은 선물하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라고 말했고 윤진이는 웃었다.
재즈 수업의 개설 목적은 재즈 에세이 쓰기였으나 부수적으로는 아이들이 미국사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좀 기를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물론 글쓰기에 바쁜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요구하기는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싹이 보이는 아이에게는 개인적으로 과제를 주는 걸로 욕심을 채우곤 한다.
대입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지적 호기심’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적 호기심이라고 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라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학에서는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그걸 파고들어 공부하는 태도를 지적 호기심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학생들 학업 역량을 갖춘 학생이라 판단한다. 아이들이 알아서 호기심도, 자기 주도성도 발휘해 주면 좋겠지만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야,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그걸 파고들어 공부하는 태도를 갖춰야지!’라고 잔소리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처럼 책을 권하거나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시킨다. 그 과정이 학생부에 기록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이걸 공부했더니 요 부분이 궁금해졌어. 요 부분을 좀 더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즉 학생의 지적인 성장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윤진이에게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따라오는 건 제 의지이자 능력일 테니 그것까지 강요할 수는 없으나 책을 가져갈 때 표정을 보면 조만간 다 읽었다고 반납할 수 있을 것 같다. 윤진이는 이런 방식을 적용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성장하면 좋은 기자의 자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힘들지만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
최근에 입시에 관한 기사를 보면 ‘정시로 돌아가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던데, 선발의 편의성을 위해서 아이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드는 게 바른 교육의 방향인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한다. 아인슈타인이 '중요한 것을 모두 측정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중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듯이 한 아이의 지적 호기심이 성장하고 그에 따라 학업 역량이 좋아져도 그런 건 숫자로 산출되지 않는다. 숫자를 높이려면 시험을 잘 쳐야하는데 그건 암기력 좋은 아이들이 훨씬 잘 한다. 우리가 암기 잘 하는 아이를 선발하기 위한 교육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숫자를 넘어선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것이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정한 입시를 위해 풀어내야 할 과제를 산더미 같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생활과 윤리'과목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아이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품에 안고 웃으며 뛰어갈 줄 아는 아이를 키우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