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말을 잘 못해요.’, ‘쟤는 원래 성격이 밝은 녀석이야.’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한 아이의 성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고정된 성격’이라는 것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일관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잘 없다.(있다면 칸트 정도?) 선생님 앞에서는 유순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왈가닥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는 흔히 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예의 바르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사건사고가 발생해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오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저희 아이가 집에서는 안 그럽니다.” 여기서 그 부모님 편들자는 건 아니지만, 정말 집에서는 안 그랬을 수도 있다.
‘성격’을 대체할만한 말로 ‘성향’이라는 낱말이 있다. 성향이라는 말속에서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요.’라는 뜻이 숨어 있다. 평소에는 내향적인 사람도 때에 따라서는 모질 게 한 마디 뱉을 수도 있는 거고, 외향적인 사람도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눈물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보통은 무뚝뚝하지만 술 한 잔 마시면 잘 웃고 말도 많아진다.(이건 아닌가?) 사람마다 불변하는 ‘성격’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라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격보다는 성향이 훨씬 인간적인 용어이다.
추측컨대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은 내향적인 ‘성향’이었을 것이다. 스승인 패츠 나바로Fats Navarro를 항상 예의 바른 태도로 극진히 모셨다. 당시에 뮤지션이라면 한 번은 거쳤던 약물의 유혹에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일상의 대부분을 연습에 매진했고 나머지 시간은 무대에 오르거나 녹음을 했다. 자, 여기까지만 듣고 그의 음악을 추측해보자. 그는 잔잔한 발라드에 능했을 것이고 화음을 차곡차곡 쌓아 들려주는, 성실하지만 다소 심심한 연주 스타일을 가졌을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의 연주는 폭발적이다.
그의 음악은 그런 추측에 뒤통수를 제대로 때린다. 물론 <Clifford Brown with String>에서 보여주는 발라드는 일품이지만 대체로 그의 음악은 강렬하다. 그의 영혼의 파트너 맥스 로치Max Roach와 함께 한 리더작 <Study in Brown>에 수록된, 본래는 아메리칸 원주민 여인과의 사랑을 다룬 곡이었다는 ‘Cherokee’는 클리포드 브라운 퀸텟의 연주로 전혀 다른 곡으로 바뀐다. 리치 파웰Richie Powell의 피아노와 맥스 로치의 드럼이 발을 쿵쿵거리고, 트럼펫과 색소폰을 울리며 행진을 알린다. 다소 조용하고 우울한 테마와 그 분위기를 살짝 이어가던 해롤드 랜드의 테너가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현란한 리듬을 타고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이 등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후로는 각각의 멤버들이 마치 태그를 하고 링 위에 들어서는 프로레슬러처럼 한 번씩 즉흥연주를 하고 빠지는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맥스 로치의 드럼은 마치 상대를 링 바닥에 메다꽂아버리는 프로레슬러의 피니시 기술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질주하는 체로키 전사의 용맹한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장중하고 우울한 테마는 그들이 패배 후 겪어야 했던 눈물의 길을 떠올린다. 여기에 체로키 여인과의 사랑놀이가 낄 자리는 없다.
허무하게 지음( 知音)을 잃어버린 맥스 로치의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할 것 같은 (내 마음대로 판단한 거지만) 내향적인 클리포드는 오히려 창의적이었다. ‘Take The A Train’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대표적인 곡이지만 그를 뛰어넘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원곡에는 없는, 오로지 퀸텟의 연주만으로 구현한 기차소리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구현할 때 쾌감을 얻는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 한둘은 꼭 있고 그 덕분에 즐거워한다. ‘레인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록 그룹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는 사물의 소리를 기타로 구현하는 걸로 유명세를 탔는데(특히 영화 ‘고질라’ 사운드트랙인 'No Shelter'에서 구현한 고질라 울음소리는 압권이다.) 뭐, 90년대 전자 기타야 이펙터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쉽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클리포드 브라운 퀸텟은 트럼펫, 드럼셋, 색소폰, 베이스, 피아노만으로 듣는 사람을 기차에 태웠다 내린다. 심벌이 힘차게 울리면서 기차가 들어오는 걸 알린다. 신나게 달리던 기차는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멈춘다. 특히 마지막에 브러시로 기차가 서서히 멈추는 소리를 구현한 맥스 로치의 드럼을 듣다 보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마저 들 정도다.
이 위대한 캄포의 존재감에 비해 해체는 너무 허망하다. 피아니스트 리치 파웰과 클리포드 브라운이 공연 후 귀가하던 중 일어난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공연 뒤풀이라도 하고 가라는 동료의 제의를 거절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에게 달려가고 있던 중이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무대를 내려와서는 본래의 내향적인 모습으로 돌아와서 가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행동이 위대한 재즈뮤지션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아이러니 때문에 팬들의 마음은 더 아프다.
다행히 맥스 로치는 오랫동안 활동했다.
부드러운 발라드부터 질주하는 하드밥까지 두루 능했던 클리포드 브라운. 내향적인 그가 소리를 흉내 내는 광대도 되고 링 위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프로레슬러도 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안에서만은 성향에 관계없이 무한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연주는 고정된 성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어진 역할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내향적인 성향인 나도 아이들 앞에서, 때로는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보다는 글이 조금 더 편한 걸 보면,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건 못 된다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