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리 모건Lee Morgan하면 하드밥을 대표하는 천재 트럼페터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동시에 그의 허무한 죽음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무대 뒤에서 동거녀에게 총을 맞는 사건.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은 사람들에게 좋은 가십거리이자 술안주가 되기 십상이다. 그의 죽음 역시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 모건이 재즈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비슷한 업적의 여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유독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은 치정에 얽힌 그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는 남의 연애사를 즐길 거리로 여기는 음흉한 구석이 있다. 연예인 A 씨의 열애설이 터지면 관련 기사들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온다. 그 결과 A 씨뿐만 과거 A 씨와 출연했던 연예인 이름까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티브이에서는 남의 연애사를 듣고 연예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진단을 내려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는데, 내 안의 관음증을 들킨 것 같아 적잖이 불편하다. 이런 현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현재 우리 어머니의 최대 관심사는 ‘김혜수는 왜 결혼을 안 할꼬?’이다. 아, 나도 이건 진짜 궁금하다.
리 모건과 헬런 모건, 이들의 비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남의 연애사를 훔쳐보고 듣는 유흥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한 명의 피해자가 생긴다. 더구나 그들의 연애사가 왠지 꺼림칙하면 당사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나는 리 모건이 이 유흥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그의 음악은 훌륭하지만 다소 가볍다.’라든지 ‘거장으로 일컫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라는 평가는 그의 연주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뭔가 꺼림칙한 죽음이 그에 대한 후한 평가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 모건을 처음 만날 때 듣게 되는 곡으로 ‘The Sidewinder’가 있다. 당시 엄청난 판매고로 리 모건을 스타 반열에 올린 곡인데, 바닥을 스르륵 훑어지나가는 뱀처럼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리듬이 흥을 돋운다. 감수성 풍부한 당시 재즈 팬들은 이 곡을 들으면 테이블 아래로 방울뱀이 지나가는 환상을 접했을 것이다. 각각의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도 훌륭하다. 특히 10분이라는 긴 플레이타임에도 지치지 않고 일정하게 때려주는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의 심벌은 시종일관 ‘방울뱀’이라는 곡명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 곡만 들으면 리 모건을 리드미컬한 연주를 하는 패기 어린 트럼펫 주자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리 모건의 최대 장점은 하모니를 고려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곡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즉흥연주를 한다. 패기 어리다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마구 흥을 발산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강약을 조절한다. ‘The Sidewinder’도 잘 들어보면 역동적인 것은 리 모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로 뒤에 연주하는 조 핸더슨Joe Henderson의 색소폰이다. 뱀의 움직임을 표현하듯 엄청나게 복잡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멋지긴 하지만 퀸텟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이에 비해 리 모건의 연주는 곡의 중심에서 서서 진중하게 퀸텟을 안정적으로 리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번 앨범 제목이 뭔가?/ <옥수수빵>입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Cornbread>에서도 마찬가지이다.(우스운 제목이지만 우습게 보다간 큰 코 다칠 만큼 근사한 앨범이다.) 여기에서도 그는 리더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시키는데 무진 공을 들인다. 이 앨범에서는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의 현신이라고 불렸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연주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표곡인 ‘Cornbread’나 ‘Ceora’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다는 곡을 중심에 놓는 연주를 들려주는데, 그의 다른 연주에 비해 훨씬 힘이 빼서 부드럽게 들린다. ‘거장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가볍다’라는 말로 평가하기에 식스텟에서 리더로서 리 모건의 활약은 묵직하고 진중하다.
소니 클락 Sonny Clark 트리오와 함께 한 <Candy>에서는 발라드가 좋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 트럼펫 특유의 운치를 잘 담고 있다. 발라드 하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연주를 빼놓을 수 없지만 뮤트 없이 트럼펫 고유의 발라드 음색을 잘 살린다는 측면에서 리 모건의 발라드가 듣기에 편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리드미컬하다. 쳇 베이커Chet Baker의 트럼펫도 깔끔하고 좋지만 리 모건의 연주는 잔잔하게 리듬을 타며 노트들을 풀어내는 매력이 있다. 바이브레이션 섞인 부드러운 음색도 좋다. 퇴근 후 손가락을 까딱 거리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듣는 ‘Since I Fell for You’는 정말 일품이다.
앳된 얼굴의 리 모건,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초심자에게 재즈를 들려줄 일이 있으면 고민 없이 ‘Ceora’를 선택한다. 화려한 세션의 연주도 훌륭하지만(특히 마치 유리 건반을 두드리는 듯 부드러운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피아노는 감탄 없이 듣기 어렵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라틴리듬으로 듣는 이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의 작곡자도,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의 세션들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사람도, 리 모건이다. 이 정도면 거장이라고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리 모건을 빼고 재즈사를 논하면 좀 서운하다. 그렇지만 리 모건의 음악 얘기 없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건 더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