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이라니 이 사람아

에디 히긴스 Eddie Higgins

by 이락 이강휘

굳이 재즈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카페, 바, 백화점 같은 곳에서 ‘Autumn Leaves’이 흘러나온다면 ‘아, 이거 알지?’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재즈를 즐겨 듣지 않는 사람도 능히 음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재즈 스탠더드 곡이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뮤지션들이 연주했으니 명연주도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캐논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의 <Somethin Else>에 수록된 ‘Autumn Leaves’는 참여 뮤지션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만한 내로다 하는 뮤지션이 총집합하여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는 데다가 전주만 들어도 바바리코트를 꺼내 입고 싶을 만큼 가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초심자를 위한 추천 재즈 리스트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곡이다.


캐논볼 버전은 정말 좋다. 하지만 에디 히긴스 Eddie Higgins의 연주도 그에 못지않은 걸작이다. 춤을 추는 듯한 히긴스의 피아노는 마치 클래식 연주처럼 깔끔하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보다 멜로디가 훨씬 강조되어 있는 즉흥연주도 듣기에 편안하다. 드럼과 베이스와의 인터페이스도 호흡이 착착 맞아떨어진다.(중간에 삽입된 흥얼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다.) 히긴스의 ‘Autumn Leaves’에서 전형적인 가을의 느낌을 받기는 어렵지만 가을이라고 모두 같은 가을이 아니듯이 이런 연주도 있고 저런 연주도 있는 게 재즈의 묘미 아니던가. 게다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야 제목에 ‘가을’이 들어가면 왠지 곡에서도 가을의 느낌이 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곡을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재즈 뮤지션 입장에서는 제목과 연주가 따로 노는 건 별 문제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잠자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앨범 자킷 사진

비단 이 곡뿐만 아니라 다른 연주에서도 에디 히긴스 트리오는 우리(특히 한국사람)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즈’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구현한다. 감각적이고 세련되었으며 서정적이다. 베이스와는 적당한 인터플레이와 호흡을 보여주고 드럼도 폭발적이라기보다는 정확하게 곡의 맥을 짚어주는 쪽에 집중한다. 어쩌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무던한데 달리 말하면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에디 히긴스 트리오는 대중적인 재즈 캄포로 평가를 받고 있고 인기도 많다.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하던데, 일본의 비너스 Venus 레이블 25주년 기념 박스세트에서 에디 히긴스는 단연 첫 번째 주자를 꿰차고 있는 것만 봐도 그들의 연주가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빌 에반스 미만 잡’

이건 놀랍게도 빌 에반스 Bill Evans가 아닌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연주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잡’이란 ‘잡스러운’에서 어근만을 따온 신조어이다. ‘잡[雜]’이라, 언제부터 에디 히긴스 정도의 거장이 잡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는지, 왜 그가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충격적이었다.(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인터넷상으로 논박을 주고받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못 된다.) 어쩌면 이 사람은 빌 에반스에 비하면 에디 히긴스의 연주의 임팩트가 약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피아노에 대한 이해도나 연주력이 떨어진다고 봤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지 네임벨류가 빌 에반스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빌 에반스의 명성만을 생각한다면 에디 히긴스는 비빌 자리가 없다. 단지 그런 이유로 에디 히긴스의 연주가 잡스럽다고 평가받아야 할까?

'잡'이라니, 그게 백발노인한테 할 말이냐!

한 집단에서 개인의 능력은 중요하다. 개인의 역량이 특출하다면 그 개인이 무리를 이끌어 훌륭한 조직으로 만들 수 있다. 단, 그 개인이 집단의 힘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개인의 역량이 조직에 묻혀버린다. 한 마디로 개인의 역량으로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리는 것은 무지하게 어렵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개인끼리 모인 조직에서 무언가 훌륭한 일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까 ‘적당히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모인 조직이 훌륭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에디 히긴스도 빌 에반스에 비하면, 제이 레온하르트 Jay Leonhart도 행크 존스 Hank Jones에 비하면, 조 아쉬오네 Joe Ascione도 아크 블레이키 Art Blakey에 비하면 뮤지션으로서의 인지도는 다소 못 미칠 수 있겠다. 하지만 에디 히긴스 트리오는 ‘적당히 우수한’ 뮤지션들의 ‘매우 훌륭한’ 호흡으로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개인의 역량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우수한 개인으로 조직된 집단보다 성과가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축구로 보자면 저 대단한 메시를 비롯한 각 클럽의 에이스를 끌어 모아놓은 스쿼드로도 월드컵 성적은 영 신통치 않은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이건 펠레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떤 집단 내의 조직원의 구성만으로 조직의 성과를 기대하고 판명하는 일이 반복한다. 하지만 성공적 과업의 관건은 개개인의 우수성이 아닌 조직원들 간의 호흡이다. 조직원들이 얼마나 서로에 대해 신뢰하고 하나의 목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랜 기간 서로에게 등을 내어주며 활동했던 이 트리오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아, 쓰다 보니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실력을 평가절하하는 느낌이 있다 싶긴 한데, 오해 마시길. ‘Shinjuku Twilight’의 전주나 ‘You Must Believe In Spring’에서 들을 수 있는 제이 레온하르트의 웅장한 활놀림은 음악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서 폴 체임버스 Paul Chambers의 화려한 운궁보다 더 듣기 좋다. 게다가 실력 차야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음, 이렇게 말해도 왠지 내가 만든 오해를 풀지 못했다는 찝찝한 느낌이다. 이게 다 에디 히긴스를 잡으로 불렀던 오만방자한 댓글 때문이다. 악플이 이렇게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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