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에 뭐 가르쳐요?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

by 이락 이강휘

백발에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6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년의 뮤지션이 색소폰을 불고 있다. 곡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관객들의 박수도 계속된다. ‘오늘이 끝날 때까지 불어주지!’하는 집념이 묻어난다.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흐뭇해했을 선글라스 속 그의 표정을 생각하며 음악에 집중한다. 무려 6분 간 이어지는 열정적인 즉흥연주에 눈을 떼기 힘들다. 오늘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불어 재끼면서도 테마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여유로움. 계속되는 즉흥연주 속에 간간히 반복되는 ‘Tenor Madness’의 테마는 만날 때마다 반갑다. 이어 세션들의 얼굴이 보인다. ‘저 양반 오늘 왜 저렇게 신났어?’하는 표정이다. 그들이 화려한 색채로 적혀 있는 ‘Sonny Rollins’를 뒤로하고 퇴장하는 소니를 보며 ‘정말 못 말린다니까.’하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재밌다.


나이 든 모습이 더 멋지다.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음반 몇 개를 찾아 듣고 나서 <Tenor Madness>를 알게 되었다. ‘테너에 미친놈’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 제목에 꽂혀서는 당장 앨범을 구해 듣고서는 ‘됐어, 나도 재즈를 듣는 귀를 가지게 됐어!’라는 심각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같은 테너 색소폰이었으나 둘의 연주가 다르게 들렸기 때문이다. 맞다, 착각이다. 다른 음반에서는 알토와 테너도 구분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저 이 두 뮤지션의 연주 스타일이 누가 들어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콜먼 호킨스Coleman Hawkins의 영향을 받은 만큼 소니 롤린스의 테너는 묵직하고 굵다. 하지만 호킨스보다 세련되었고 듣기에도 편하다. 음을 툭툭 던져두고 촤르르륵 연결시키는 유머러스한 연주가 사람의 마음을 끈다. 존 콜트레인의 음색 역시 호킨스의 색깔이 보이지만 그보다 주목되는 것은 그의 연주 방식이다. 숨을 쉬는 공간조차도 음으로 채워버리겠다는 일종의 집념이 느껴지는데 그러려면 입과 코 이외에 숨을 쉬는 인체 기관을 하나 더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테니 ‘존 콜트레인에게는 아가미가 달린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훌륭한 연주이나 내가 감당하기에는 다소 피곤할 때가 있다. 그에 반해 소니의 연주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거친 가운데에서도 쉴 공간을 만들어주어서 들으면서 호흡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테너를 듣고 싶을 날이면 일단 소니 롤린스를 찾게 된다.


물론 소니 롤린스가 이런 스타일에 안주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오넷 콜먼의 연주를 들은 직후에 3년 동안 잠적하며 다리 위에서 연주 연습을 했다는 매우 유명한 일화도 있는데, 잠적 후 발매한 앨범 <Bridge>는 프리재즈의 영향을 받은 연주 스타일을 보여준다.(그래서 ‘Bridge’ 외에는 좀 듣기 어렵다. 그래도 짐 홀의 기타는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다리 위에서 색소폰연습이라... 요즘 같으면 경찰 출동할 일이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소니 롤린스의 매력은 유머와 여유가 아닐까. 늘 새로운 재즈를 갈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상에서 본 그의 연주는 오히려 자신이 초기에 연주했던 유머와 위트가 번뜩이는 전통 재즈에 가깝다. 관객의 박수에 여유롭게 리듬을 ‘착!’하고 올리는 노년의 롤린스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평생에 걸쳐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새로운’ 재즈가 아닌 ‘뮤지션과 관람객이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재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최고의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멋들어진 강의를 하고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내가 생각한 최고의 교사였다. “이 문제는 이렇게 접근하면 딱! 풀리지!” 인터넷 강의에 나오는 스타강사를 흉내 내어가며 화려한 문제풀이 기술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숨 쉴 공간은 내어주지 않았다. 완벽한 수업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강의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 잔다. 몇몇 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안 들키게 졸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힘이 쭉쭉 빠진 채 교실을 나오면서 ‘그래도 몇몇은 열심히 듣잖아.’하고 자위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이들의 성장에 시험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행히도 이 깨달음을 위해서 다리 위에서 수업을 연습하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나는 강의보다 글을 쓰게 하거나 책을 읽는 수업을 즐긴다. 이런 수업은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글쓰기나 책 읽기는 버거운 일이지만 졸기 위해 노력할 만큼 수업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숨 쉴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문제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야를 키울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국어시간에는 뭘 가르쳐요?” 예전에는 기껏해야 ‘뭐, 문제 풀고 답 찾고 그런 거지요.’ 정도로 답하고 대강 얼버무렸다. 진짜 하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국어시간에 아이들이랑 같이 책 읽고 글 쓰는데요?” 아무래도 이쪽이 훨씬 폼 나고 좋다.


근사한 아프로헤어

가끔 유튜브에서 소니 롤린스의 공연을 찾아본다. 젊은 시절보다 2000년대 이후의 영상을 더 자주 클릭하게 되는데 관객의 박수 리듬에 맞춰 연주하는 그의 흰 수염과 백발 아프로헤어가 근사하기 때문이다. 그 영상을 볼 때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수염을 길러야겠다. 염색하지 않은 흰 수염을 기른 채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참 감사하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젠가 다리 위에 올라 수업을 연구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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